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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나비’가 날아가던 날

 나비는 우리 회사 직원이다. 무슨 일이든 앞장서고, 고객은 물론 직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다. 콜로라도주립대학을 나와 결혼도 해서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지 10년째다. 다니던 직장이 파산하면서 직업을 잃고 몇 군데 전전하다가 3년 전 LA로 혼자 왔다. 자리가 잡히면 가족을 데려올 계획이라고 했다.
 
그가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했다. 돌아가자니 새롭게 직장을 구해야 하는 일이 막막하고, 머물러 있자니 가족 걱정이 태산이란다.
 
가끔 가족들과 한 시간도 넘게 통화를 했다. 전화가 끝나면 한쪽 구석에서 울기도 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나비를 ‘베이비’라며 놀려댔다. 덩치에 걸맞지 않게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나비를 어린아이처럼 보았던 모양이다.  
 
청년 시절, 나는 미국을 동경하며 살았다. 결혼 후 사업도 잘되고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어 갈 무렵, 봄볕에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이민의 꿈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아내와 상의했지만 한사코 반대했다.  
 


월드컵이 있던 해 연말, 이민을 결단했다. 비행기 표를 예약해 두고 아내를 설득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싫다는 아내를 어찌할 수 없었다. 혼자서라도 가기로 했다. 뒷일은 당신이 알아서 하라는 말을 남긴 채 당시 중학생인 아들과 초등학생인 딸을 데리고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왔다.  
 
초기이민 생활이 다 그렇듯 무척 힘든 나날이었다. 아내와 통화할 때면 여전히 돌아오라고만 했다. 정말 돌아가야 하나. 어찌할 바를 몰라 헌팅턴비치 모래톱에 앉아 서쪽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허전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리곤 했다.  
 
강한 척, 아무 일 없는 듯 숨기고 있었지만 아이들인들 그걸 모를 리 있겠는가. 가끔 저희 엄마와 통화하며 그간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많이 울었다는 말을 후일 들었다.  
 
몇 달 후, 아내가 비즈니스를 처남에게 맡기고 이민을 왔다. 비로소 아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되돌아보면 결혼생활이 파탄 지경에 이를 수도 있는 무모한 결단이었다.
 
어느 날 나비가 면담을 청했다. 콜로라도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살기로 했단다. 잘 결정했다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는 또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쏟아냈다.  
 
나비가 떠나기 전, 간단한 타코 파티를 했다. 각기 다른 피부색을 가진 직원들이 서로를 감싸 안고 위로해주는 모습이 정겨웠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가장들이다.
 
나비를 보면서 20년 전 내 모습이 스쳐간다. 나보다 열 배나 더 긴 세월 가족과 헤어져 갈등했을 그를 보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한다. 마지막 포옹을 하면서 나비가 훌쩍인다. 베이비가 맞나 보다. 너울너울 날아가는 검은 나비를 본다. “하이 베이비, 굿럭.”  

김홍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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