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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나를 숨 쉬게 한 ‘젓가락’

참으로 미안했다. 방심했나, 어쩌자고 이런 일이… 봄 정원 손질하다 꽃삽으로 지렁이를 그만 두 동강이를 내고 말았다. 흙 속 자기 집에서 변을 당한 것이다. 흙을 들쑤셔 화초를 심는 데 나는 열중했었다. 얼른 땅속에 다시 밀어 넣었다. 가슴에 미안한 바람이 불었다. 지렁이 절단 사건 후 살았을까 죽었을까 안쓰러운 마음으로 화단에 물을 뿌리곤 했다.
 
우리 주택 단지에는 앞치마 같은 작은 잔디밭이 차고 양쪽으로 있다. 어느 날 물기 없는 시멘트 바닥을 꿈틀대며 가고 있는 지렁이를 발견했다. 잔디밭을 많이 벗어나 메마른 땅을 향하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얼른 젓가락을 들고 나와 촉촉한 잔디밭으로 옮겨주었다. 꼬불꼬불 꿈틀댔다. 안전지대로 피신시켰다. 그때 그 지렁이는 이 구명 운동을 꿈이나 꿨을까. 나는 안도했다.
 
인간에게 매우 유용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 지렁이가 나의 ‘지사부(지렁이 사부)’가 되었다. 낙엽 같은 유기물질을 채취한 지렁이 분변토는 땅을 중화시키는 가장 좋은 천연비료라고 한다. 땅속 깊은 서식지까지 운반하여 흙과 함께 먹고 살면서 표면으로 토양을 파 사방으로 작은 굴을 많이 만들어 준다. 그 분변토가 땅 표면으로 옮겨져 산성화된 땅을 중화시킬 때 매우 비옥하게 되는 게 그 비결로 알려져 있다. 세균과 효소, 가장 질 좋은 자연비료라고 그 유명한 찰스 다윈도 이미 알고 책까지 저술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사부가 건강하게 살아있는 땅에는 생명이 있다. 지렁이 생리는 토양 속에 서식하고 있는 많은 생물체들의 환경을 보호해주는 것이다. 온갖 공해 물질을 먹어 치운다. 정화시켜 생태계를 살리는 아주 유익한 벌레인 것을 나는 미처 잘 알지 못했다. 농약과 화학비료 등 온갖 공해 또 도시계획으로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인간보다 훨씬 더 유익한 일을 하는 그런 지렁이를 두 동강이 낸 내가 한없이 미안했다.
 
암이란 어둡고 메마른 일상 속에 나는 갇혀 있었다. 체중이 줄고 면역체계가 비정상이었다. 그때 보도 포장 위로 보이지 않는 젓가락이 나를 집어 올려 건져주었다. 숨이 쉬어졌다.  
 
‘생명이 오그라들 때/ 목수 청년이/ 보이지 않는 젓가락으로 나를 집어 올렸다/ 그리고 질척한 흙 속으로 밀어 넣고/ 그때 나는/ 햇볕 쨍쨍한 시멘트 바닥에서/ 체액이 말라가는/ 길 잃은 한 마리 지렁이였다’-필자 시집 ‘파르르 떠는 열애’ 중 시 ‘그 젓가락’.
 
이제는 뒷마당 꽃밭 일할 때면 안경까지 쓰고 조심한다. 경험을 통한 배움은 이렇듯 좋은 스승이 된다.

김영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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