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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전쟁이 가져다준 것

“사랑에 빠지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게 되고, 전쟁에 휘말리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크리스틴 한나의 소설 ‘나이팅게일’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나이팅게일’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점령으로 피폐해진 프랑스에서 이상, 열정, 상황으로 분리된 두 자매가 생존, 사랑, 자유를 향해 위험한 길을 걸어가는, 자식들과 그리고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지켜내기 위한 담대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선택과 결정을 해야만 했던 여인들의 삶에 대한 가슴 아픈 전쟁소설이다.  
 
1939년 프랑스 조용한 카리보 마을에서 전선으로 향하는 남편 앙투안과 작별한 비안느모리악, 그녀는 나치가 프랑스를 침범하리라 믿지 않지만… 트럭과 탱크에 탄 병사들이 행군해 들어오고, 하늘을 메운 나치 비행기는 무고한 시민들에게 폭탄을 떨어뜨린다. 독일군 대위가 비안느의 집을 숙소로 정하자, 비안느와 딸은 생존을 위해 적과 살아간다. 음식, 돈, 희망도 없이 삶의 위험이 더해지자 비안느는 전쟁의 공포와 비참함에 맞서 점차 강인한 엄마이자 여인으로 변모한다. 아내이면서 엄마인 내가 그 당시에 살았었다면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감수할 수 있었을까?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아이의 목숨까지 내걸 수 있었을까?  
 
독립심이 강하고 자유롭고 반항적인 성향의 18세의 동생 이사벨은 나치의 파리 점령이 시작될 때 레지스탕스 가에탕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용감하게 레지스탕스에 가입한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변혁적인 사건이자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세계에 가장 위험한 대결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초기, 블라디미르 젤린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피신 제안을 받았다. 그는 “내게 필요한 건 대피 수단이 아니라 탄약”이라는 멋진 응수로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행복해졌다.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이 많은 세상에서 아주 보기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에 남기로 한 그는 양복과 넥타이 대신 올리버 재킷과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키이우 거리에서 우크라이나를 위해 싸울 것을 맹세한 비디오를 게시하며 국민에게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의 곁엔 아내 올레나 젤린스키도 함께 있었다. 젤린스키 여사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공개서한에서 러시아를 비난하며 “우크라이나 민간인에 대한 대량 학살”을 알렸다. 대통령에 당선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정치 경험이 전무한 코미디언 출신의 블라디미르 젤린스키는 영국의 처칠에 견줄만한 진정성 있는 전쟁 지도자로 떠올랐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집과 가족을 잃고 얼어붙은 추운 길가에 서 있는 수많은 피난민들, 빈털터리로 집을 나왔다며 아이를 품에 안고 우는 남자, 뮌헨의 안전한 장소로 딸을 피신시킨 후, 혼자 우크라이나로 돌아와 저항에 가담할 계획이라고 말하는 여배우, 그녀는 만일 러시아 침공이 없었다면 지금쯤 키이우에 있는 극장에서 호머의 오디세이 무대에 서 있을 것이라 한다. 볼쇼이 발레단의 슈퍼 발레리나 올가 스미르노바는 “내가 러시아를 부끄러워할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그리고 유명한 모스크바 발레단을 떠났다.  
 
전쟁으로 인해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삶의 밑바닥은 어디까지일까? “사랑에 빠지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게 되고, 전쟁에 휘말리면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춘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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