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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노숙자 모녀의 지상 생존기

탑사이드(Topside)

도시라는 현대인의 삶의 공간에서 철저하게 버림받은 두 모녀 노숙자의 생존기. 뉴욕 지하철역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Vertical Entertainment]

도시라는 현대인의 삶의 공간에서 철저하게 버림받은 두 모녀 노숙자의 생존기. 뉴욕 지하철역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Vertical Entertainment]

영화 리뷰

영화 리뷰

제77회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초연된 이 영화는 애초 뉴욕 노숙자들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시작됐다. 셀린 헬드 감독은 수년간지하철역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노숙자들의 생존 문제를 고민해 왔다. 헬드와 모간 조지의 공동 연출로 이들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하다.  
 
니키(셀린 헬드)는 다섯 살짜리 딸 리틀(자일라 파머)과 함께 폐쇄되어 인적이 없는 뉴욕의 지하철역에서 5년 동안 살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도시계획이 들어서고 당국은 이들 노숙자 모녀에게 은신처가 되어왔던 공간을 쓸어버리려 한다.
 
니키는 하는 수 없이 5년 동안 단 한 번도 세상 빛을 본 적이 없는 딸을 데리고 지상(Topside)으로 올라온다. 리틀에게는 새롭게 경험하는 빛의 세계이지만 페니 하나 없는 이들 모녀는 당장 몸을 의탁할 곳도 없다. 그들은 뉴욕 거리를 분주하게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치지만, 누구 하나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다. 모녀는 오히려 건달을 만나 위험에 처한다.  
 
리틀은 엄마의 다른 모습을 본다. 모든 게 처음인 리틀에게 자신보다 더 불안해하는 엄마는 이제껏 지하에서 보아왔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다. 정신없이 지하철역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리틀은 한순간 엄마의 손을 놓쳐 버린다.
 
‘탑사이드’는 베네치아영화제 최고의 기술상인 마리오 세란드레이상을 수상했다. SXSW영화제 역시 최우수 감독상에 해당하는 심사위원상을 수여했다. 영화는 다섯 살짜리 소녀 리틀의 시각을 관객의 시각과 일치시키는 과정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상당한 양의 기술을 동원한다. 관객은 리틀의 시각을 통해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소녀의 물리적 촉각과 호기심을 매우 리얼하게 경험한다. 지속적으로 흔들리는 카메라가 연출해내는 장면들은 엄마를 따라가는 소녀의 불안 심리이고 엄마의 좌절일 것이다.  
 
헬드 감독은 엄마 니키를 스스로 연기한다. 도시라는 현대인의 삶의 공간에서 철저하게 버림받은 두 명의 생명체를 향한 연출자의 연민을 어쩌면 그녀 말고는 달리 연기할 배우가 없었을지 모른다.  
 
‘탑사이드’는 샌드라 블록 주연의 SF스릴러 ‘그래비티(Gravity)'의 홈리스 버전이다. 소리도 산소도 없는 우주 한가운데에 홀로 남겨진 스톤 박사처럼 두 모녀는 세상의 그 어느 곳도 아닌 바로 우리 앞에 홀로 버려져 있다. 도시의 거리에는 우리가 미처 실감하지 못한 수많은 ‘그들’의 절망이 있을 터이다.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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