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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경계인으로 살기

“한국 떠나 미국 살아도
사고방식, 행동 못바꿔
서로 다른 사회에서  
영향을 받으면서도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못하고 있다”  
 
LA 공항에 도착하니 눈부시게 환한 날씨가 나를 반겨줬다.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는 말이 나돈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 LA로 돌아왔다. 원래 계획은 2월에 올 예정이었지만 친구들이 내게 투표하고 가라고 강력하게 권유했다. 권유라 하기 보다는 협박에 가까웠다. 만약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떨어질 경우에 역적 소리를 들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미 정해진 귀국 일을 선거 후로 바꾸었다. 그만큼 한국의 대선 열기는 뜨거웠다.  
 
지난번 한국 방문 땐 조국 사태로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촛불과 태극기로 양분된 상태에서 나 또한 어느 한 편이 되어 열을 올리며 분노했었다. 이번 방문에선 대선 기간에 맞물려서 여야 후보의 사활을 건 선거전 형태를 보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새벽까지 초접전이라 결과를 기다리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피를 말리게 하는 접전 끝에 근소한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아슬아슬한 표차에 유권자들 사이에는 기쁨과 탄식이 엇갈렸다. 한반도가 체제로는 남북으로 두 동강이 나고 그 중에 남쪽은 갈등과 분열로 동과 서로 쫙 갈라졌다. 언제쯤 한반도가 하나가 되고 지방색이 없어지려는지 안타까웠다.  
 
피부로 느끼는 LA 분위기는 너무나 평화스러워 불과 며칠 전에 한국서 느꼈던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마치 꿈을 꾼 듯 아득하게 느껴졌다. 한국서 한동안 지하철만 타고 다니다 모처럼 운전대를 잡으니 손에 진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운전 연습 겸 살살 로컬 길로 익숙하게 다니던 마켓이나 주유소 등을 들렀다. 그런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무척 여유로웠고 밝았다. 화창한 봄날에, 그것도 LA 특유의 날씨에 가로수에는 분홍색 꽃들이 만발했다. ‘낙원이 바로 이런 모습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살아온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옮겨졌으나 한국의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을 버릴 수 없었고 현재 거주지인 미국 사회에도 충분히 적응되지 않은, 말하자면 어정쩡한 상태에 놓인 경계인이다. 서로 다른 사회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어느 쪽에도 완전하게 속하지 못해 아직도 헤매고 있다.  스스로 그런 삶을 택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오게 된 것은 남편의 직장 때문이었다. 88 올림픽이 끝나고 갑자기 온 가족이 미국에 발을 디딘 것이 엊그제 같은데 30년이 훌쩍 넘었다. 3~4년 ‘미국살이’ 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작정이었는데 애들 교육 문제로 이산 가족이 되었다. 세상 만사가 계획대로 되지는 않나 보다. 남편은 한국에서 일을 하고 나는 애들과 남편 사이를 가끔씩 왔다 갔다 했다. 그러기를 오랜 세월, 남편이 은퇴를 했다. 이번에는 남편이 시부모님이 계신 한국과 나와 애들이 사는 LA를 오가며 지냈다.  
 
감히 ‘경계인’이란 용어를 내게 붙인 것은 젊은 시절 읽은 최인훈씨의 소설 ‘광장’에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이명준이 경계인으로 묘사되었다. 광장은 남북 분단의 비극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다루고 있다. 소설 속 키워드는 ‘밀실’과 ‘광장’이다. 밀실이란 자신만의 내밀한 삶의 공간이며 ‘광장’은 사회적 삶의 공간을 말한다. 이명준은 철학도로서 밀실과 광장을 찾아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그 선택의 기로에서 방황한 인물이다.  
 
이명준은 밀실인 남한에서의 나태와 방종을 벗어나고 싶었고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로 새로운 광장을 찾아 월북한다. 그러나 북한의 부자연스러운 이념적 구속에 환멸을 느끼고 절망한 후 새로운 광장을 찾아 중립국으로 가려고 계획한다. 하지만 삶의 참된 가치의 실현에 의문을 느끼며 결국은 배 위에서 투신 자살을 한다. 바다는 이념이 배제된 그만의 밀실인 동시에 광장인지도 모르겠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다 보니 주위 사람들이 “한국이 좋으냐? 미국이 좋으냐?”고 묻는다. 어린 아이들에게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 묻는 거나 마찬가지로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엄마는 엄마라서 좋고 아빠는 아빠라서 좋을 뿐 비교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긴 미국과 한국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오가다 보면 물가나 날씨 등등 자꾸 비교하게 될 때도 있긴 하다.  
 
한국은 언어의 편안함, 가족 친구 지인 등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과의 끈끈한 인연이 정답고 귀하다. 반면 현재의 거주지인 LA의 경우 한국에 비해 넓은 땅에 공기가 맑고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좋은 날씨가 있다. 날씨 때문에 우울했던 기분도 절로 좋아진다. 남편은 LA에 오면 늘 “이 좋은 날씨 두고 죽기 아깝다”고 말한다. “타향도 정들면 고향”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LA도 나의 고향이 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국의 대선 중에 나는 평정심을 잃을 만큼 가슴 졸이며 선거 결과에 큰 관심을 가졌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 때를 뒤돌아보니 후보 둘 중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든 별로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었다. 이번 한국 방문을 계기로 앞으론 미국의 정치나 사회 이슈에도 적극적인 참여의식을 가져야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인생의 석양을 맞은 지금 남편과 나는 선산이 있는 한국에 뼈를 묻을 것인가, 애들이 있는 LA 인근에 누울 것인가 고심 중이다. 여전히 미국과 한국 그 중간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으니 경계인이 맞는 것 같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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