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삶] 주머니에 관한 짧은 수다
죽음이란 그래,/ 주머니가 없는 옷/ 입고 가는 길이지// 삶이란 결국/ 주머니가 없는 옷을 입으면 불편해서/ 가방 메고, 우산 쓰고/ 가는 길이지// (…) 그러나 이쯤에서/저 타는 노을빛 한강으로 힘껏/ 열쇠꾸러미를 던질 수는 없는 일이다// 주머니가 없는 옷을 입고서/ 걷고 또 걸어보는/ 이 밤의 산책이 괴롭지 않은 거다// 길이 고마운 거다- 서경온 시인의 ‘주머니가 없는 옷’ 부분
죽음이란 주머니가 없는 옷을 입고 가는 길이라는 시적 통찰이 돋보인다. 죽음은 무엇도 지참할 수 없다. 영혼까지도 버려야 하는 게 죽음이니까. 이 사실적 진실이 시인의 인식으로 더 명료하게 다가온다.
빨래하려고 내놓은 옷가지의 주머니를 뒤지다 보니 지폐 몇장이 나온다.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찾고 있던 액세서리나 영수증 따위가 나오기도 한다. 주머니는 요긴한 보관수단이다. 요즘 세상은 많은 주머니를 필요로 한다. 지나치게 주머니에 집착하기도 한다.
지인 한 분은 샤워하다 쓰러져 그 자리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충분히 더 살 수 있는 나이여서 안타깝고 황망했다.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숨겨놓은 것인지 비축해 놓은 것인지 여기저기서 돈주머니가 나왔다고 한다. 평소 근검절약으로 재산을 일군 부자란 건 알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주머니가 숨어 있을 줄은 가족도 몰랐다고 한다.
더 황당한 일은 가족들이 어딘가에 돈을 더 숨겨놨을 것이라며 찾아보느라 정작 고인을 향한 예를 제대로 갖추지도 못하더라는 것이다. 숨겨져 있던 주머니들은 남겨진 가족들에게 복이 되기는커녕 화가 되었음은 자명하다.
삶의 길에선 많은 주머니를 가진 사람이 유리하다. 얼마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우대를 받곤 하니까. 우리는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주머니를 챙긴다. 인생이 애초부터 소유가 관건인 것처럼, 그것이 최선이고 생의 가치를 높이는 것처럼, 그래서 주머니가 적은 사람은 가득 찬 주머니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사람을 선망하곤 한다.
죽음에는 후일담이 있다. 죽음으로 삶이 평가되곤 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지닐 수 없는 죽음으로 비로소 한 인생이 지닌 가치가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한다. 준비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생의 전모가 드러나 씁쓸함을 목격하게 되는 일은 흔하다.
삶을 빈손이 되는 죽음처럼 가벼이 여길 수는 없겠다. 무소유를 예찬하지만 주머니가 없는 옷의 불편함을 견디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무작정 열쇠꾸러미를 한강에 던질 수는 없을 터이니 말이다. 삶에는 삶의 책무가 있다. 그러므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다만 누구도 피할 수는 없는 죽음, 길 끝에 다다를 때를 준비할 필요가 있겠다.
주머니를 하나씩 줄여가는 일은 그나마 할 수 있는 준비과정 아닐까 싶다. 지참이나 소유보다 나눔과 공유를 미덕으로 삼으려는 마음이야말로 최선일 것이다. 주머니의 소유 여부를고민할 게 아니라 주머니를 어디에다 어떻게 풀어놓느냐가 고민이어야 한다. 많은 소유가 화근이 될 이유는 없겠다. 꽁꽁 싸맨 채 풀지 않거나 숨겨놓는 게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떨어진 주머니에 어패 들었다는 속담도 있다. 허름한 주머니에 귀한 것이 들어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지만, 보잘것없는 해진 주머니라도 뒤져보면 뭔가 들어 있을 거다. 하찮은 것이라도 꺼내서 누군가와 나누다 보면 본래 지닌 가치보다 훨씬 큰 의미가 되는 반전을 경험하게도 될 것이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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