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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칼럼] 하루를 예습하는 습관

 이른 새벽 하루의 생활을 '예습(preview)' 하는 습관을 가진지 20년이 넘었다.  
 
우연한 기회에 가톨릭 신부와 저녁식사를 하며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맺음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대화를 나눈 것이 예습하는 습관을 갖게 된 동기가 됐다.  
 
그전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의 생활을 되돌아보며 좋았던 점들과 고쳐야 할 점들을 '복습(review)'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신부님이 하루의 생활을 복습하는 것도 좋지만 새벽 시간에 하루의 생활을 예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란 조언을 하셨다. 처음엔 언뜻 이해를 하지 못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하루를 어떻게 예습할 수 있느냐고 여쭈었다.  
 
그러자 신부님은 이른 새벽 묵상의 시간에 조용히 눈을 감고 오늘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짚어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것들이며 어떤 준비를 해야하고 누구를 만나서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하고 어떻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용히 자신과 대화를 하라고 하셨다. 그러면 알찬 하루를 위해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일종의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새벽 묵상 시간에 하루의 생활을 예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어떤 회의 석상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있는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매일 하루의 생활을 예습하는 습관이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 언젠가 오전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가는데 한 동료가 다가와서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매일 아침 대부분의 사람은 허겁지겁 회의실에 들어와서 지시 사항을 듣느라 정신이 없는데 어떻게 항상 준비된 발언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동료는 지난 몇 달 동안 나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무척 궁금해 했다고 한다.
 
그와 함께 빈 회의실로 들어가서 하루의 생활을 예습하는 방법을 간단히 소개했다. 그런데 나의 방법이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간단했던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면서도 한번 실천해 보겠다고 약속을 했다.  
 
나의 새벽 묵상과 침묵의 시간은 어머니의 강요로 30대 중반에 시작했던 새벽 기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머니는 새벽 기도를 '기적 창출의 시간'으로 믿으셨고 새벽의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 영혼의 대화를 나누셨다. 몇 년 동안 힘든 훈련 과정을 거친 후에서야 새벽 기도와 묵상의 시간이 나에게도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침묵의 영역과 기도의 영역은 하나를 이루고 있기에 침묵이라는 기반 위에서 기도의 초자연성이 실현된다. 기도는 우리의 말들을 침묵 속으로 쏟아붓는다. 그러면 우리는 침묵의 영성을 통해 하나님과 깊은 영혼의 대화를 나누게 된다.  
 
특히 대화 중에서도 말 없는 대화가 가장 심오한 편이며 많은 신뢰를 필요로 하고 가장 신중한 자세를 요구한다. 말 없는 대화는 시끄러운 마음을 평온하고 고요하게 잠재우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침묵의 바다 속에 깊이 가라앉아 분해되어 침묵의 일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침묵과 결합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침묵을 통한 결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우리는 침묵 속에서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며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를 향한 무한한 사랑과 용서를 나타내는 표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속에는 말보다 오히려 침묵이 더 많으며 하나님의 침묵 속에는 엄청난 도움의 힘이 깃들어 있다. 특히 하나님께 등을 돌린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침묵으로 길을 열어주신다. 왜냐하면 사랑과 용서를 위한 토대가 곧 침묵이기 때문이다.

손국락 / 보잉사 시스템공학 박사ㆍ라번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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