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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가닥 루시’ 다큐와 리메이크 비교 감상하세요

루시와 데시
비잉 더 리카르도

미국 최고의 만담꾼이자코미디언이었던루실 볼과 그녀의 남편 데시아나즈의 관계를 뒤돌아보는 다큐멘터리 ‘루시와 데시’. [Amazon Studios]

미국 최고의 만담꾼이자코미디언이었던루실 볼과 그녀의 남편 데시아나즈의 관계를 뒤돌아보는 다큐멘터리 ‘루시와 데시’. [Amazon Studios]

영화 리뷰

영화 리뷰

TV 사상 최초로 시도된 앙상블 캐스트, 관객들 앞에서 35mm 흑백 필름으로 촬영된 최초의 TV 프로그램 ‘왈가닥 루시(I Love Lucy)'는 CBS 방영 당시 68%에 달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1950년대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방송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트콤 중 하나로 평가받았던 프로그램이 1957년 5월 180번째 에피소드를 마지막으로 방영을 갑자기 종료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루시(루실 볼)와 남편 데시아나즈의 결혼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루시와 데시의 요란스러운 사랑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작품 두 편이 아마존 프라임에서 스트리밍되고 있다. 2022년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하비에르 바뎀), 여우주연상(니콜 키드먼), 남우조연상(JK시몬즈) 후보로 올라 있는 ‘비잉 더 리카르도(Being the Ricardos)'는 데시가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고 있던 특정 시기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두 사람의 관계가 깨지려던 무렵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키드만은 이 작품으로 이미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루시와 데시(Lucy and Desi)'는 루실 볼의 인생 전반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두 작품 모두 루시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보는 수작들이다.  
 


영화 ‘비잉 더 리카르도’는 루실 볼(니콜 키드만)의 남편 데시(하비에르 바뎀)가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겪게 되는 두 사람의 갈등을 집중적으로 그린다. [Amazon Studios]

영화 ‘비잉 더 리카르도’는 루실 볼(니콜 키드만)의 남편 데시(하비에르 바뎀)가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겪게 되는 두 사람의 갈등을 집중적으로 그린다. [Amazon Studios]

루실 볼은 1911년 뉴욕 제임스타운에서 ‘루시 데지레 볼’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밑에서 홀로 자랐다. 14살 때 6살 연상의 동네 깡패와 교제를 하는 동안 늘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루시는 훗날 그와의 만남이 해맑고 명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오히려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했다. 뉴욕의 존 머레이 앤더슨 연기학교에 들어가 베티 데이비스와 연기 수업을 함께 받았다. 베티가 온갖 찬사를 받는 동안 루시는 한동안 무명 배우로 수모를 겪어야 했다.  
 
1940년 그녀는 ‘너무 많은 여자들(Too Many Girls)'를 촬영하던 중 만난 쿠바계 엔터테이너 데시와 사랑에 빠지면서 생의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된다. 데시는 쿠바 출신의 망명자였다. 성격, 생활방식, 종교관이 너무나 달랐지만 두 사람은 주위의 만류에도 결혼에 성공하며 할리우드의 요란한 커플로 떠올랐다.  
 
1948년 CBS는 루시 볼 주연의 TV쇼 ‘아이 러브 루시’를 기획한다. 루시는 이때 배우자 데시를 남편 역에 캐스팅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CBS는 루시의 다소 황당한 주장을 거부할 수 없었다. ‘루시 시리즈’는 회를 거듭할수록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며 5개의 에미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루시와 데시 두 사람은 코믹 커플로서 미국인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1989년 루실이 죽고 난 후 발간된 자서전에는 그녀가 오랜 세월 가정 폭력에 시달렸다는 충격적인 고백이 들어 있다. 사람들은 폭력의 가해자가 남편 데시였다고 단정 짓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쾌활한 이미지로 그녀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역 오디션에 참가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던 루시는 1989년 베버리힐스의 자택에서 77세의 나이로 영면하기 전, 우리에게 남긴 말이 있다. 언젠가 먼 미래에 나의 인생을 돌아볼 때 ‘젠장, 해 보기라도 할걸’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세상에, 내가 그런 짓도 했었다니’라고 말하는 생을 살라고.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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