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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낮게 드리운 꽃

몰래 숨어 사는 푸르름 속 붉은 점 하나
 
땅속에서 솟아오른 듯
 
다소곳한 철 지난겨울 선인장 꽃 한 송이
 
방안을 분홍색으로 가득 채운다
 
 
 
외로움에 코를 끙끙대는 겨울 해가
 
잠에서 깨어나 산 울타리 너머 빛나듯
 
저 밑바닥에서 뾰쪽한 턱을 쳐들어
 
창밖을 내다보다 들킨 봉오리
 
봉긋한 속을 헤집어 꽃잎을 문 햇빛
 
색채를 끌어내고 윤곽을 짜내야 하는 햇빛
 
꽃잎의 뼈가 흔들리고 진동하는 소리에 넋이 나간다
 
활기차게 돋보이는 해의 무늬가 그림자 되어
 
내 앞에 다가선다
 
 
 
태양이 완성한 풍경 속에 그림자와 함께 한발짝 한발짝
 
걸음을 옮긴다 멀어져간 기억들이 꽃 속에 숨어있다
 
그들의 눈물이 그들의 특성이라는 것을
 
당당함을 뽐내는 낮게 드리운 겨울꽃
 
세월 속에 묻힌 연분홍 봉오리

정숙자 / 시인·아스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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