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네트워크] 배트맨이 돌아오는 세상
가난한 고등학생 피터 파커와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기업인 브루스 웨인. 사뭇 다른 두 인물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각각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의 만화를 통해 탄생한 캐릭터이자, 각자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이라는 이름으로 악당과 맞서는 수퍼 히어로라는 점은 기본. 저마다 잔혹한 범죄에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은 인물이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통해 전 세계에 낯익은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 가지 더 추가하면, 영화 시리즈의 새 출발이 잦은 캐릭터라는 점도 이제는 공통점이 될 것 같다. 새로 개봉한 ‘더 배트맨’의 로버트 패틴슨은 1989년 ‘배트맨’의 마이클 키튼, 2005년 ‘배트맨 비긴즈’의 크리스천 베일에 이어 다시 배트맨 이야기의 새 출발을 알리는 주인공이다.
앞서 두 시리즈의 전개 과정은 좀 달랐다. 크리스천 베일이 주연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시리즈는 ‘다크 나이트’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까지 호평과 함께 3부작으로 완결됐다.
반면 마이클 키튼이 시작한 ‘배트맨’은 3편 발 킬머, 4편 조지 클루니로 주연이 바뀐 데다 4편 ‘배트맨과 로빈’은 졸작이란 평가와 함께 시리즈를 막 내리게 했다.
스파이더맨도 기복을 겪었다. 2000년대초 토비 맥과이어가 주연한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3부작을 마친 반면 앤드루 가필드가 주연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2부로 단명했다.
곧이어 새로운 스파이더맨으로 등장한 톰 홀랜드는 다른 수퍼 히어로와 함께한 어벤져스 시리즈와 스파이더맨 자체 시리즈 모두 흥행 활약을 펼쳤다.
한국에선 2017년 1편 ‘스파이더맨:홈커밍’, 2019년 2편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에 이어 코로나19로 극장가가 한껏 위축된 지난 연말 개봉한 ‘스파이더맨:노 웨이 홈’도 700만 넘는 관객을 모았다.
로버트 패틴슨의 ‘더 배트맨’은 새로운 출발답게, 배트맨 이야기의 새로운 결을 보여준다.
이 영화의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으로 활동한 지 이제 겨우 2년. 또 액션 영웅만 아니라 탐정 같은 면모가 두드러진다. 연쇄살인범이 남긴 암호문을 단서로 감춰진 음모를 추적한다.
여기서 실감하게 되는 것은 배트맨은 그가 나고 자란 도시, 고담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란 점이다. 스파이더맨과 달리 이 영화에서 배트맨의 상대는 먼 우주나 다른 차원에서 온 악당이 아니라 고담시의 악당이다. 배우는 다르지만 ‘다크 나이트’에서 악과 맞서기 위해 악을 자처하는 배트맨의 모습까지 본 터.
이후 스크린 밖에서는 세월이 흘렀건만 ‘더 배트맨’의 고담시는 여전히 정치인과 검찰·경찰과 범죄조직 두목이 한통속인 악의 소굴이다. 변한 게 없는 현실과 새로울 것 없는 악당들 탓인지, 극장문을 나서며 좀 우울해졌다. 어쩌면 수퍼 히어로의 활약에 더이상 큰 기대가 없는 나이가 된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후남 / 한국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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