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노트] 전쟁과 약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러시아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점령했던 러시아가,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폐막 나흘 후인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본토를 전격으로 침공했다. 많은 전쟁 명분들이 거론되고 있는데, 러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이면서 부동항인 세바스토플을 포함한 크림 반도의 점령 전부터 러시아는 호시탐탐 우크라이나를 노려왔다고 한다. 지구 위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졌지만 추위에 얼지 않는 부동항이 없었기 때문에 해상 패권 장악을 위한 부동항 점령에 역사적으로 집착해 온 러시아.또 다른 예로, 러시아는 1800년대 말 요동반도의 부동항 뤼순 항을 획득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몇 년 뒤 러일전쟁에서 패배하면서 뤼순 항 확보에 실패했다. 이때 일본군의 승리 뒤에는 러시아를 정벌한다는 뜻의 ‘정로환’이라는 약이 있었다. 전쟁 지역의 오염된 나쁜 물로 인해 일본 병사들이 대규모 배탈.설사를 일으키며 나가떨어지자, 이를 막기 위해 일본 내에서 긴급 실시된 약품 공모전에서 ‘정로환’이 개발된 것이다. 이 약을 먹고 병사력을 재정비한 일본이 러시아에 이겼다는 얘기다. 정로환은 수십 년 후 한국에서 ‘정벌할 정’이 아닌 ‘바를 정’자 ‘정로환’으로 생산되어 국민의 배탈.설사 방지를 위한 가정상비약이 되기도 했다. 어릴 적, 작고 동글동글한 까만색 정로환이, 마치 필자의 외가댁에서 기르던 염소의 똥과 닮았던 기억이 있는데 실제로 염소똥 약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전쟁 구호 약물로 널리 알려진 또 다른 약은 아마도 페니실린일 것이다. 화이자는 알렉산더 플레밍이 실험실에서 발견한 페니실린을 1940년대 초 상업적으로 약품화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래서 당시 2차 대전 구호 약물로 대량의 페니실린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많은 병사를 감염 사망으로부터 살려낼 수 있었다. 세균성 감염의 최초 치료제인 페니실린 이후로 아주 다양한 항 감염성 약물들이 개발되었다. 필자도 십여년 전 화이자 글로벌 마케팅 디렉터로서 이머징 마켓 항균제 전략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쟁터에 생명을 구하는 약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군인들의 졸음과 피로를 무모하리만큼 마비시키는 강력한 각성제의 투여는 약이 독으로써 활용된 경우이다. 일명 히로뽕, 메트 암페타민과 암페타민 등이 2차 대전 중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군사력 증가 명목으로 군인들에게 배급하였고 군인들은 야간 행군을 무릅쓰고 며칠 밤낮을 진군하였다고 한다. 피로 해소를 넘어 마약성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각성제의 상습 복용으로 2차 대전 후 수십만명의 참전 용사들에게 심각한 후유증이 나타났다. 영토 확장을 위해 강요된 약물 복용의 안타까운 피해가 아닐 수 없다.
러시아의 침략 전쟁에 세계 각국이 일제히 비난하며 강력한 경제 제재를 시작한 가운데 코로나 백신 스푸트니크는 러시아 정부 펀드로 생산되기 때문에 WHO, 미국, 유럽 등에서의 승인과 사용이 어려워질 전망이라고 한다. 그런 한편, 유럽제약협회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환자들을 위한 필요 의약품에 대해 제재는 하지 않도록 특별 성명서를 통해 요청했다고 한다.
두려운 전쟁과 비위생적인 전장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질병과 부상들, 그리고 이를 치료하고 살려내기 위한 즉각적이고 강력한 새로운 약물들의 개발. 전쟁과 약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류은주 / 삼양 바이오팜 USA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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