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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남은 밥 ‘한 숟가락’

 초등학교 2학년 때가 아닌지 싶다. 저녁 먹다가 밥을 남겼다. 아빠가 지금 북한에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시며, 밥을 버리는 것은 그 아이들에 대한 적절한 대우가 아니라고 했다.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던 나는 배곯은 채 자는 북한 아이들 몫까지 다 먹어야 했다. 배가 불러서 그날 밤에는 잠도 안 왔다.
 
학교에 갔다. 선생님은 지난번 시험에 ‘난 공산당이 싫어요’하며 숨진 어린이를 가수인 ‘이용복’이라고 쓴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공책 한 장에 앞뒤로 ‘난 공산당이 싫어요’와 ‘숨진 어린이는 이용복이 아니라 이승복입니다’를 빼곡히 써서 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선생님은 가수 이용복의 왕팬이 아니었던가 싶다.  
 
숙제를 제출하고 온 짝꿍이 심통 맞은 소리로 ‘나는 공산당이 싫어’라고 했다. 그날 아침 역시 밥 한 알도 남기지 않고 다 먹고 온 나도 지지 않고 ‘매일 저만 배부르게 먹고 불쌍한 어린이에게 밥도 안 주는 김일성이 나는 정말 싫어’라고 했다. 짝꿍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쳐다봤다.  
 


여름 방학이 되어 외가에 갔다.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늘 가던 절에 가셨다. 할머니 친구인, 억센 이북 사투리의 호들갑스러운 공양주 보살을 난 참 좋아했다. 오랜만에 왔다며 싱글벙글 반기고는 밥공기 가득 밥을 퍼주었다. 나의 남은 밥을 보며 보살은 ‘쯧쯧쯧’ 혀를 차고 농부의 손이 88번을 가야 쌀 한 톨이 만들어진다며 힘들게 키운 것이니 다 먹으라고 했다.  
 
곧이어 열 개가 넘는 지옥의 종류를 설명하면서 기이한 소리로 ‘날 살려주오~’라고 소리치며 손을 올려 허공을 잡는 시늉까지 하며 진짜 지옥에 갔다 온 사람처럼 말했다. 그리고 어떤 지옥은 내가 그동안 먹지 않고 버린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못 나온다고 엄포를 놓았다. 놀란 내가 밥을 꾸역꾸역 먹기 시작하자, 할머니가 보살에게 핀잔을 주며 나를 옆으로 끌어 앉히고 등을 쓰다듬으셨다. 눈물이 핑 돌았다. 깨끗하게 빈 밥공기를 보며 보살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몇 년이 지났다. 저녁 식사 시간에 밥을 조금 남겼다. 이제 북한의 식량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됐는지, 아빠는 아프리카에서 기아에 허덕이며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그때 세계가 매우 불공평하다는 것을 알았다. 남은 밥을 싹싹 다 긁어 먹으며 남한에서 태어난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그 후로 여간하면 밥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부른 배를 참아가며 먹다가 한계에 이르는 시점이 바로 마지막 한 숟가락이었다. 그것까지 먹을 때면 속이 더부룩하곤 했다. 하지만 식구들의 밥상을 직접 요리하면서부터 내가 만든 밥은 되도록 남기지 않는다.  
 
오늘 저녁에 딸아이가 두어 숟가락 정도의 밥을 남겼다. 딸을 바라보며 배가 부르면 그만 먹으라고 했다. 버린 음식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 문제와 쌀 농사짓느라 고생하는 농부들을 생각하며, 다음에는 밥이 많으면 먹기 전에 미리 덜어내라고 했다. 다행히 하나님을 믿기에 지옥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이리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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