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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리스본에서 만난 파두

몇 해 전, 어렵게 짬을 내어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향했다. 마음속에 오래 그려왔던 곳이었다.
 
미국 이민 초기, 삶이 고달프고 힘들었다. 어느 날 운전 중 포르투갈 민속음악 ‘파두’를 소개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었다. 파두 가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애절한 음률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한을 푸는 듯한 절절한 노래였다. 그 음조는 우울한 마음을 파고들어 결국 나를 울렸다. 그날 이후, 리스본 어느 카페에서 파두를 들으며 가슴 적시는 시간을 기다려 왔다.  
 
숙소에 도착했다. 높은 언덕에 자리한 호텔이다. 방을 안내 받았다. 유리창을 여니 타구스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리스본 사람들의 운명을 쥐고 너울거리는 바다.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바다 가운데 서서 빌고 있다’라는 파두 노랫말이 떠올랐다.  
 
다음 날 골목 구석구석을 기웃거리며 길 따라 강을 향해 내려갔다. 건물과 집들, 검푸른 이끼가 낀 담장에 세월의 더께가 보인다. 창가에 놓인 붉은 제라니움 꽃과 시간이 멈춘 듯 낡고 오래된 골목길이 어울려 풍취가 배어난다. 차 소리가 들린다. 남편과 나는 벽에 등을 붙이고 조각품처럼 서서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작은 상점이 즐비하다. 진열장 안쪽 해바라기를 한 아름 품고 있는 큼직한 하늘색 화병이 좋아 커피라도 마시자며 앞서가는 남편 팔을 잡아당겼다. 정교하게 조각된 나무 천장과 벽 장식에 세월의 운치가 묻어난다. 시간이 박제된 듯한 분위기 속으로 파두가 흐른다.
 
검정과 하얀 타일로 모자이크된 좁은 길을 걷는다. 레코드 가게 앞이다. 반갑다. 안으로 들어가니 레코드 재킷이 벽면에 가득하다. 1990년을 지나면서 LP는 CD로 바뀌고,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사라진 추억의 레코드 가게다.  
 
턴테이블에 앨범을 올리고 바늘을 조심스럽게 얹었다. 마음의 위안을 받았던 시간이 스친다. 잘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아 조금씩 맛을 보듯 음반을 바꿔가며 파두를 몇 구절씩 들어보았다. 어두운 시대에 약속할 수 없는 사랑과 이별을 노래하는 우울하고 구슬픈 가락이 보드랍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리스본 중심가 뒷길로 들어섰다. 여기저기서 파두가 흘러나온다. 1820년 무렵 리스본에서 태어난 음악 장르, 서민의 애환이 맞닿아 만들어진 파두를 선술집 분위기 속에서 듣고 싶었다. 무대 없이 관객들과 마주하고 앉은 두 남자가 기타를 치고 검은 숄을 두른 여인은 노래를 한다. 애절한 음악을 들으며 우울함을 달랬던 시간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사람 살아가는 일은 슬픔과 기쁨, 행복과 불행의 굴곡을 이어가는 것이다. 숙명이란 뜻의  ‘파두’는 인생의 애환을 노래하며 한을 풀어내어 마음을 달래는 것이다. 우리가 시간을 넘어 아리랑을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파두와 함께 살아가는 리스본의 삶이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파두와 함께 깊어가는 리스본 밤거리를 남편과 나는 풍경이 되어 걸었다.  

이정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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