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칼럼] 패권주의 넘어 상생의 시대로
전쟁이 터졌다. 멀고 낯선 나라들이다. 하지만 그 영향력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경제적인 파급력도 대단하다. 세계 각지에서 크고 작은 전쟁이 터져도 남의 일 같고 현실감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예전과 달리 주변 사람들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아마도 바이든 행정부의 작심한 듯한 강경 태도와 언론을 통한 강력한 선전전, 그리고 무엇보다 전쟁을 일으킨 주체가 군사 강대국 러시아이기 때문일 것이다.우크라이나가 전쟁터지만 러시아의 상대는 우크라이나만이 아니다. 미국 중심의 서방 세계가 똘똘 뭉쳐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모양새가 이상하다. 한 어른은 탱크와 대포를 앞세우고 힘 없는 어린 아이를 때리기 시작하는데 상대편 어른은 직접 나서지 않고 뒷짐을 진 채 어린 아이에게 우리가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열심히 버티라고 입만 싸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군사적 대응은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물러나라고 압박한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푸틴은 미국과 서방 세계의 반발을 생각하지 않고 불쑥 전쟁이란 카드를 꺼내들었을까? 아니다.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고 나름 대처 방안도 마련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굳이 그가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이고 러시아라는 강대국의 최고 권좌에서 장기집권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들출 필요도 없다.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푸틴은 왜 전쟁을 일으켰을까. 무엇을 얻으려 인명피해와 금전적 피해, 경제적 타격, 국제적 비난을 모두 감수하겠다는 것인가. 그리고 미국은 왜 직접 군사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일까.
푸틴은 오래전부터 우크라이나에 대한 애정과 우려를 표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서방에 앞마당을 내어주는 것과 다름 없다. 1997년 이후 나토 회원국은 14개국이나 늘었다. 지도에서 보면 점차 서방 동맹이 러시아를 옥죄어가는 느낌을 갖게 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중립화를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전쟁도 결국은 내 나라의 안전을 조금이라도 더 확실하게 담보하고 적대국에 대해서는 더 위협적이고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겠다는 국제정치 생리가 표출된 것이다. 러시아는 물론이고 미국과 나토 입장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다. 한 쪽은 무력을 먼저 사용했고 다른 쪽은 세계 경제 시스템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서방 세계의 경제 제재는 총력전 양상이다. 미국과 유럽은 세계 금융 시스템을 무기화하고 있다. 전쟁으로 치면 육해공에서 할 수 있는 공격력을 죄다 쏟아붓는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은 러시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이나 거의 디폴트 수준으로 강등시키고 있다. 주요 글로벌 기업의 탈러시아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 수천 억 달러 규모의 러시아 자산을 동결하고 러시아 주요 은행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했다. 이렇게 러시아가 경제적으로 고립되면서 완제품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러시아의 물가까지 급등할 것으로 우려된다.
경제적 고립이 러시아의 퇴각을 이끌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반발을 사면서 중국과 손을 잡고 서방과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는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전쟁은 이미 터졌다. 하지만 더 이상 확전하거나 장기화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제 서로에게 탈출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과 러시아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핵무기와 미사일에 관한 군비 축소, 서로의 영역 존중 등을 논의해야 한다.
강대국들은 더 이상 상대를 제압하려는 패권주의에 머물지 말고 함께 동반자로서 상생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인류의 평안은 절대 전쟁을 통해 해결되지 않는다.
김병일 / 경제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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