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광장] 실수를 통해 유창해지는 영어
제자가 전해 준 실수담입니다. 입사 초기, 외국인 고객이 하도 재촉을 해서 답신 말미에 이렇게 썼대요. “Please trust me. I am hardly working on it.”(믿어주세요. 이 일은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쓰려 했지만 얼떨결에 ‘work hard’(열심히 일하다)와 ‘hardly work’(거의 일하지 않는다)를 착각한 거죠.영문과씩이나 나온 사람이 너무 큰 실수를 한 건가요? 혹은 모국어가 아닌데 그럴 수 있다 싶은가요?
사실 한국인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무엇보다도 일상에서 영어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언어는 기본적으로 소통을 위한 도구이기에 평소 시행착오를 거치며 익혀야 하는데, 그런 상황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영어에 대한 일반의 기대치는 꽤 높습니다.
학교는 물론 취업과 각종 시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해 왔기 때문이겠지요.
사용할 일이 적어 애써 공부한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니까 실력 있는 사람도 실제 영어를 써야 할 상황에선 손사래를 치며 숨어요. 창피당하거나 실망시키느니 차라리 영어 못하는 사람으로 살겠다면서요. 그러다 보면 영어가 점점 미워지죠.
자주 사용하지도 않는 영어인데 발음 좋고 어휘 풍부하고 문법도 틀려선 안 된다는 건 강박관념입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정확성은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거든요.
언어 지식이 적더라도 계속 오해를 사지 않을 정도라면 누구나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어요. 좀 틀리거나 어색해도 자신 있게 말하는 편이 가만있는 것보다 훨씬 낫죠. 수학이나 과학과 달리 대충만 알아도 써먹을 수 있는 것이 언어입니다.
한국인은 대부분 잘 준비된 영어 화자이지만 정작 자신을 스스로 잘 인정하지 않아요. 혹시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다른 외국인들의 영어를 유심히 들어본 적 있나요? 실력이 모자라도 소통에 집중하는 분들이 많지요. 마찬가지로 외국인이 서툰 한국어로 말하면 고마운 마음이 들고요.
언어 사용은 맞고 틀리는 문제풀이가 아닙니다. 그러니 언어 공부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 아닐까요?
코로나 시대라 대면이 어려워진 대신 클릭 하나로 정보를 만나고 외국인과 화상 회의를 하며 영어 쓸 일이 더 많아졌다고 해요.
새해를 맞아 어떤 이유로든 영어를 다시 손에 잡으시는 분들께 제안합니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떨치고 오직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의지만 장착하시길!
채서영 / 서강대 영문학과 교수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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