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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이동식 화장터

 우크라이나는 푸틴 입장에서 보면 ‘빼앗긴 땅’일 것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푸틴은 동독 수도 드리스덴에 파견된 KGB 총책이었다. 젊은 정보 대장은 장벽이 힘없이 무너지고 독일인들이 소련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 것을 목격하고 침통한 마음으로 기밀문서를 소각하고 러시아로 돌아갔다. 그는 소련 연방을 양보한 고르바초프를 원망했을 것이다. 푸틴은 권력의 사다리를 하나하나 올라 러시아 대통령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그들 입장에서는 ‘우리 땅이었다가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지만 러시아는 ‘잘못 양보한 땅’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러시아는 발틱 3국, 폴란드도 언젠가 다시 찾아와야 할 땅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이들 국가는 재빠르게  NATO에 가입,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합병해도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NATO 헌장은 회원국이 공격받으면 무조건 방어해야 하는 조항(Article 5)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곡창이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나치 군대는 러시아 침공에 앞서 군량미 확보를 위해 우크라이나부터 공격했다. 들판에 곡식이 익어가는 가을 수확기였다. 불행히도 그 해는 농사가 안 좋아 곳간을 채울 수 없었다. 히틀러는 군량미를 절약하기 위해 먹을 입을 줄이지 않을 수 없었고 수용소에 있는 유대인들이 희생양이 되었다. (The Silk Roads, Peter Frankopan)
 
퓰리처상을 받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Thomas Friedman은 20년 전, ‘The Lexus And The Olive Tree’라는 베스트셀러를 내놓았다. 저자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면서 냉전의 시대가 고하고 세계화(Globalization)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발자국 더 나가 맥도날드 패스트푸드가 들어와 있는 두 인접국은 전쟁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McDonald Theory)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그의 이론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세계는 지금 미국, NATO를 한 축으로 하고 러시아-중국이 연합하는 새로운 냉전(A New Cold War )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이 죽게 되어 있다. 군인만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무고한 민간인까지 목숨을 잃는다. 냉엄한 국제관계에서는 ‘힘없는 나라’가 밟히게 되어 있다. 우크라이나는 NATO 가입국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유럽 여러 나라가 자기 생명 희생하며 방어해 주지 않을 것이다. 경제 제재는 러시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지만 일단 시작된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이동식 화장터’를 가지고 다닌다는 보도에 충격을 받았다. 푸틴의 부름을 받고 전쟁터에 끌려갔다가 산화한 러시아 군인들은 가족 품에 안겨 묻힐 수도 없단 말인가.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슬픈 일이다.  
 
미국은 한국전쟁이 끝난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몰장병의 유해를 찾아 가족에게 인도하고 있지 않은가. 러시아는 전사자의 시체를 본국에 가져갈 경우 발생할 소요사태를 염려해 현장에서 태워 버릴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병사는 총을 쏠 수 있을 때까지 쓸모가 있다. 싸늘하게 식은 몸은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자주 정권이 바뀌는 민주주의 국가는 영구 집권하는 독재국가와 장기 군사전략을 세우는 데 불리한 점이 많다는 우려가 있다. 분명한 것은 민주국가는 그래도 인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전사자를 현장에서 태우는 것은 인륜에 어긋난다.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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