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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M교수의 팔순

신호철

신호철

몇몇 문우들이 모여 M교수의 팔순을 준비했다. 매달 정기적으로 모이던 날짜에 시간을 좀 앞당기고 편하게 식사를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식당 별실을 예약했다. 꽃다발도 만들고 선물과 공로패도 마련했다. 잔치라고 하기엔 조촐했지만 내용만큼은 화기애애하고 감동적이었다. M교수도 기뻐했으며 모인 모두가 그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다.
 
나와 M교수와의 만남은 아마도 1970년 고등학교 1학년 때가 아닌가 싶다. 첫 영어 수업시간이었다. 교실의 문이 열리고 먼저 보인 것은 선생님이 아니라 긴 막대기였다. 게다가 그 막대기 끝에 교재가 얹혀있었다. “Good morning everyone .“ 그의 첫 수업 첫 마디로 기억된다. 작은 키에 머리는 짧은 하이칼라로 단정히 뒤로 빗어넘겼다. 이제 막 Y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첫 부임지로 그가 다녔던 모교로 오셨고, 신혼이라는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파다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선 향수 냄새가 솔솔 풍겼고 큰 금색 시계가 그의 손목을 단단히 감아 쥐고 있어서인지 왼지 무겁게 느껴졌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미국 시카고에 왔다. 학교를 다니며 한편 일을 해야 했다. 해뜨기 전 별을 보며 아파트를 빠져 나와 밤도 깊은 시간 달빛 아래를 걸으며 돌아 왔다. 이듬해 한국에 나가 함께 화실을 했던 아내와 결혼을 했고 두 자녀가 태어났다. 그 즈음 신문에 난 ‘문예창작교실’이 눈에 띄었다. 고등학교 은사인 M교수였다. 미술을 전공한 내가 왜 문학에 이토록 목말라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피곤한 몸을 끌고 일주일에 한번씩 모이는 3개월의 수업을 한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 후 시카고 문인회를 노크했고 지금까지 14년동안 시를 쓰고 있다. 시로 한국문학에 등단한 후 10년만에 시집(바람에 기대어)을 출간했다. 문학모임에 참석하면 늘 뵈던 M교수, 그는 늘 건강해 보이시고 유머러스하시면서 말씀도 잘 하셔서 그의 나이를 염두에 둔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는 젊은 날 서울에서 나에게 영어를 가르치셨고, 늦은 나이 시카고에서 문학을 접하게 해 주셨다. 그와의 인연으로 나는 시인이 되었다.
 
오늘 팔순의 M교수를 바라보다 문득 젊음과 늙음의 차이가 무엇일까? 다소 엉뚱한 생각을 했다. 조금 헐렁한 옷을 입고 단순한 오늘을 느리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외에 더 많은 시간의 기억을 쌓아갈 뿐, 52년 전 그와 지금 그의 주체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재촉해서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지만 지난 시간들을 통과하면서 사람들은 여물어가기도 하고 시들어 가기도 한다. M교수는 허리도 곧고 생각도 젊다. 그는 단단히 여물어 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말씀하셨지만, 인간에게 다 이룬 것은 결코 찾아 오지 않는다. 완성이 다 이룬 것이라면 결핍은 이루지 못한 것이다. 나는 M교수에게 진심으로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길 빕니다.”라고 말했지만 나의 마음 속에서는 아직 결핍을 사랑하시라고 전하고 싶었다. 인생 길에서 부족함은 삶의 욕구가 되고 추진력이 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결핍과 목마름이 있으시길, 더 깊이 고독해지시기를, 더 많이 걸으시고 날마다 그리움의 문 앞에 서 계시기를, 일상의 권태로움울 뒤집어 놓을 만큼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이고 가슴을 열어 큰 기쁨 속에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는 찍어 나온 붕어빵 같은 인생이 아니기에 나를 끌고 가는 힘으로 더 많이 웃고, 울고, 사랑하시기를 바란다.  
 
추운 겨울에도 꽃은 피었다. 팔순의 꽃은 모인 모두에게 웃음과 기쁨을 선사했다. 그는 여전히 청춘이었고 은근한 꽃향기를 풍겼다. 모인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진정한 젊음은 강한 팔뚝보다 인생을 휘어 유유히 흐르는 강물 같은 늙어감에 있음을, 진부한 나이가 결코 파릇한 젊음을 우회하지 않음을 서로의 눈으로 확인하였다. 적어도 우리를 만드신 이가 우리를 오라 하실 때까지는.(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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