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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조상님, 그냥 편히 쉬세요’

 이번에도 엉터리 제사를 지냈다. 우리 집 제사는 가족의 사정에 따라 날짜와 시간이 달라진다. 이를테면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는 것이 맞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저녁으로 미루는 식이다. 
 
제사상을 아무리 간단하게 차린다 해도 일 요령이 없는 나에게는 쉽지 않다. 명절 며칠 전 청소를 시작하고 거울도 말갛게 닦아 놓는다.
 
마켓은 전날부터 조금씩 본다. 누군가는 만들어진 것 사서 놓기만 하는 요즈음 제사가 무어 그리 힘드냐고 눈치 없는 소리를 한다. 물론 떡하고, 술 빚던 옛날에 비할 수는 없지만 소소하게 신경 쓸 일이 많다. 고기와 생선, 과일은 두세 군데 마켓을 돌아 좋은 것을 고른다.  
 
음식은 몇 가지 생략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했다. 몇 가지는 사오기도 하지만 식구들이 좋아하는 것은 집에서 한다. 갈비찜을 하고 조기를 굽고 전 한 가지를 부쳤다. 밥을 하고 탕국도 끓였다. 떡은 금방 해놓은 따끈한 것으로 골라왔다.      
 


제상에 올릴 그릇은 제기는 아니지만 흰 도자기 그릇으로 꺼내 음식을 푸짐히 담았다. 홍동백서니 어동육서니 하는 것은 무시하고 내가 놓고 싶은 대로 보기 좋게 놓았다. 밤은 까기 힘들어 생략하고 북어와 곶감도 먹을 사람이 없어 뺐다. 음식을 차린 후 해마다 재탕해서 쓰는 지방을 붙이고 촛불을 켰다. 향 몇 가닥에 불을 붙이니 온 집안에 향내가 퍼진다.  
 
처음 제사를 지내게 되었을 때, 조금은 피곤하고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여러 해 지나면서 꼭 해야 할 것만 골라 하는 요령이 생겼다. 오랜만에 돌아오는 가족들 먹일 생각으로 준비하니 마음도 편하고 인색하지도 않게 되었다. 조상님 덕분에 내 입이 호강하니 그것도 좋은 일이다.  
 
나물을 그득히 담고 생선 위에 젓가락 올려놓고 자식들 잘 보살펴 달라고 해마다 빌었다. 조상님 위한 제사가 아니라 내 욕심 차리자고 지내는 일이 되었다. 우리 식구 잘 봐 달라는 뇌물성 제사이다.
 
제사상 앞에서 삶과 죽음의 길 중간 어디쯤 가고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어느 날 부모의 죽음을 마주하고 또 다른 생명이 태어나는 것을 보며 늙어 갈 것이다. 그 아이들에게서 새로운 힘을 얻고 그렇게 세상은 이어지겠지. 죽은 자를 위한 음식을 상 가득 쌓아 놓고 산 자는 천 년을 살 것처럼 다투며 산다.  
 
어린 시절 하느님은 그 많은 사람들 기도를 어떻게 다 들어줄 수 있을까 궁금했다. 하느님 자리는 너무 피곤하겠다는 짠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열심히 원하는 것을 달라고 기도했다. 곰곰 생각해보니 이승 떠나 저승에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늘 자식 걱정에 시달릴 부모님이 애잔하다. 말하지 않는다고 자식이 원하는 것을 부모님이 모르실까 싶기도 했다.  
 
이번에는 절을 하면서 조상님께 더 이상 내 요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자식들 걱정 말고 “그냥 편히 쉬세요” 하며 절을 했다.

박연실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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