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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버지와 백석의 시

“아버지는 눈 내리는 날  
설악산의 품에 안기셨다  
종일토록 내리는 함박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백석의 시를
떠올리고 눈 속에 가신  
아버지를 추억한다”
 
1년 중 가장 추운 날이라는 대한(大寒)을 하루 앞두고 한국에는 하루 종일 함박눈이 내렸다. 거실 창밖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꽃송이들을 넋을 잃고 바라봤다. 굵은 눈과 가루눈이 한데 어울려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전후 좌우로 흩날리는 모습이 마치 흰옷 입은 작은 천사들이 화려한 군무를 추는 듯 느껴졌다. 많은 눈이 소리 없이 내려와서 세상 소음을 덮어버리고 어지러운 지면을 흰 도화지처럼 깨끗하게 만들어 버렸다. LA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기에 더욱 신비스러웠다. 내가 한국에 머무는 아파트는 산이 둘러 있어서 흰 눈에 덮인 나무들과 숲은 도심에서 보기 힘든 멋진 풍경이었다.  
 
나는 그렇게 눈이 펑펑 오는 날에는 오래 전에 설악산 눈 속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회상한다.   또한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떠오른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중략)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이 시에는 아름답고 아팠던 시인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백석이 청년 시절 김영한이라는 미모의 기생과 사랑에 빠졌으나 집안의 반대로 결혼할 수 없게 되자 위의 시를 지어 주고 떠났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그 기생은 후에 대원각이라는 고급요정을 운영했는데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감명 받아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서 길상사가 되었다. 그때 대원각은 천억원이 넘었는데 그녀는 “그까짓 천억원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라고 했다. 길상사의 공덕 비 앞에는 위의 시가 새겨 있다.
 
일제 강점기 천재시인으로 알려진 백석은 시인들이 가장 사랑한 시인으로 동 시대를 살았던  윤동주가 가장 흠모했던 시인이라고 한다. 윤동주는 백석의 첫 시집인 ‘사슴’을 구할 수 없게 되자 그 시집 전체를 직접 필사했다고 전해진다.  백석이 윤동주만큼 우리에게 덜 알려진 것은 그가 일본 유학 후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북쪽에 있는 함흥에서 교사로 있다가 해방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마르고 긴 얼굴에 숱이 많고 약간 곱슬머리인 백석과 우리 아버지의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너무 닮았다. 뿐만 아니라 시에 나오는 내용 중에 우리 아버지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눈, 깊은 산, 세상을 피하려는 것’ 등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비교적 큰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다가 믿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해서 사업에 크게 실패한 경험이 있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은 후 사업에 전념하지 않으셨다.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시간이 날 때마다 홀로 산에 다니는 것을 즐기셨다. 한국의 산이란 산은 거의 다 다니셨다. 오랜 세월 산행을 하다 보니 거의 등산 전문가 수준에 이르셨다. 그런 아버지가 종내에는 산에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67세 되시던 해 12월 말이었다. 며칠씩 소식 없이 산에서 늦으시는 경우가 허다했으므로 가족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연휴를 즐겼다. 그런데 경찰로부터 날벼락 같은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가 변을 당하신 거였다. 설악산 중턱 봉정암 못 미쳐 벼랑 아래서 산에 오르던 마을 주민이 눈 속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벼랑 위에 있는 얼음에 눈이 덮인 것을 모르고 방심하신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연휴가 시작되기 하루 전인 12월 30일에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서 설악산으로 떠나셨다. 연휴를 맞아 31일에 관광버스로 몰려든 등산객들이 새해 첫날 대청봉에 올라 해맞이를 할  테니 이들을 피해 하루 전 날인 섣달 그믐에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다. 날짜를 앞당겼을 뿐 아니라 다른 등산객들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반대 코스를 잡으셨다. 만약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처럼 하루만 늦게 출발했거나 같은 방향을 택하셨더라면 사고 당시 사람들의 눈에 띄어 생명을 잃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오빠와 두 사위가 버스를 대절해서 밤길을 달려 아버지의 시신을 모셔왔다. 집에 돌아온 남편이 “나도 죽을 뻔 했어”라고 말했다. 그 당시 설악산 가는 길은 좁은 비탈길에 눈마저 쌓여 버스가 다니기에는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아버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눈 덮인 설악산의 설경은 숨이 막힐 정도로 황홀했어. 그 절경을 혼자 만끽하다가 좋아하는 산에서 행복하게 가신 것 같아” 하며 나를 위로했다.  
 
가난한 백석은 눈이 푹푹 내리는 밤 아름다운 연인을 생각하며 홀로 술을 마신다.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이기에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자기들을 외면하는 세상을 피해서 단둘이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들어가서 오두막을 짓고 행복하게 사는 환상이다. 임과 함께라면 산골 오두막인들 어떠하리!  
 
나는 오늘 같이 함박눈이 펄펄 날리는 날이면 설악산 등산을 갔다 살아 돌아오지 못하신 아버지가 몹시 그립다. 아버지가 세상을 등지고 산에 그토록 다니셨던 것은 결국 사악한 세상에 졌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직 믿을 것은 산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산을 안식처로 삼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사심없이 반겨주는 산이 있기에 틈만 나면 달려 가시다가 끝내는 눈 내리는 날 설악산의 품에 안기셨다. 종일토록 내리는 함박눈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백석의 시를 떠올리고 눈 속에 가신 아버지를 추억한다.

배광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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