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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인간의 품격

지난해 추수감사절 직후 주문 판매를 하는 손님이 스카프 500장이 든 박스를 들고 왔다. 스카프 하나하나에 레이블을 붙여달라는 주문이었다. 앞이 캄캄했다. 그 많은 일을 가게도 바쁜 시기에 가져오다니. 2~3일 사이에 일을 마쳐 주어야 주문받은 손님에게 팔 수 있다고 했다. 어쩔 수 없어 일할 사람을 찾았으나 구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 가게 옷을 다른 곳에 내보내고 그 스카프를 내가 하기로 했다. 그때 팔지 않으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된다니 그의 사업이 걱정되었다. 코로나19로 모든 비즈니스가 바닥을 친 마당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다.  
 
조그마한 검은색 레이블을 스카프 한쪽 모서리에 붙이는 작업이다. 완전히 공장에서 한 가지 작업에 몰두하는 사람 같이 익숙하게 손을 놀려야 했다. 눈이 침침해 보이지 않아 손가락을 바늘에 찔리기도 했다.  
 
단순한 일이지만 스카프는 이 레이블이 없으면 상품으로 가치가 없었다. ‘100% pure silk, dry clean only, made in USA’. 우리가 많이 보는 옷마다 붙어 있는 레이블이다.
 
가게에서 옷을 세탁할 때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할지, 물세탁을 해야 할지 헷갈릴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꼭 옷에 부착된 레이블을 확인한다. 레이블에는 섬유 종류와 세탁 방법, 손질하는 법까지 자세히 설명돼 있다. 면 종류는 물세탁을 해야 깨끗하다. 어쩌다 레이블을 잘못 읽거나 옷의 감촉을 감지해 드라이클리닝을 해야 하는 옷을 물세탁해 망치는 일이 있다.  
 
요즘 폴리에스터는 가죽처럼 부드럽고 보기에도 가죽으로 보인다. 가죽 코트를 폴리에스터로 착각해 물빨래를 했다. 세탁기에서 꺼내는 순간 확 줄어든 느낌이 들었다. 옷걸이에 걸어 말렸는데 딱딱해져 도저히 입을 수가 없는 옷이 되어버렸다.
 
손님이 코트를 찾으러 올 날짜가 되었다. 어떻게 손님을 대할까, 옷 가격은 얼마나 비쌀까, 손님이 화를 내고 소리치면 무어라 답할까. 여러 생각들이 온종일 내 머리를 맴돈다. 아니야, 완전히 내 실수니까 손님이 원하는 대로 해줘야 돼. 이렇게 결정하고 나니 두렵지가 않다.  
 
그리고 그냥 솔직하게 손님에게 설명했다. 가죽 세탁 공장에 보내면 세탁비도 비싸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번거로워 여기서 세탁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니 배상을 하겠다고 했다. 뜻밖에 손님은 코트를 오래 입었는데 세탁해서 누구를 주려고 했다고 한다. 그 누구는 생활이 어려워 코트를 사 입을 수 없었는데 이 코트를 입고 싶어했다고 한다. 손님이 코트를 살 수 있는 값을 요구했는데 아마도 그 돈으로는 사기 어려울 것 같았다. 내가 돈을 더 주겠다고 하니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사람도 각자 갖고 있는 인성과 품성에 맞는 레이블이 있다. 누구나 보면 알아차리는 그것 말이다. 이 손님처럼 없는 사람과 나누며 사는, 따뜻한 품성의 ‘레이블’을 가슴에 달고 싶다. 

양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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