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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오디세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애정표현에 서툰 이 시대 아버지
아버지 이름은 힘겨운 삶의 무게

나이 들며 치료결정권도 못 가져
자녀들의 일방적 주도권은 곤란

 이른 은퇴를 선언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존재감에서 대체 불가한 배우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연기 경력에 비해 출연작은 단출하기 그지없다. 그의 출연작을 한 편이라도 보았더라면 메소드 연기의 달인이라는 평가에 딱히 이견은 없을 듯싶다. ‘아버지의 이름으로’에서 열연한 아들 배역은 세상 모든 아버지에 대한 오마주였으며 가슴 절절한 아들의 참회를 대신한다. 명작의 여운은 열혈 청춘의 시절을 시나브로 소환하며 현실 속 부자 관계와 오버랩 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의 시대적 배경은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의 통일을 요구하는 IRA에 의한 런던 폭탄 테러 사건이다. 주범의 누명을 뒤집어쓰고 옥살이를 시작한 스무 살 청년 제리 콘론의 비장한 실화이기도 하다. 유달리 부모 속을 썩이며 크고 작은 사고를 치고 다니는 아들의 미래를 위해 런던으로 떠나보내는 부자간의 이별 장면은 묵직한 부정으로 다가선다. “정직한 돈으로 더 멀리 갈 수 있다” “손안의 새 한 마리가 숲속의 두 마리보다 더 가치 있다”던 아버지의 당부는 꼰대의 잔소리로 치부되고 아들은 테러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혈기는 왕성했으나 진중하지 못한 아들 탓에 모진 옥살이를 함께한 아버지 조세프의 절절한 심정은 한지에 번진 수묵화의 여운으로 스크린에 그려진다. 험난한 과정을 겪으며 무죄를 입증한 제리는 마침내 풀려나지만 아버지는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제리의 모습은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아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영화는 뒤늦게 아버지의 가르침을 깨닫고 정의와 진실을 위해 투쟁하며 의미 있는 삶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으로 막을 내리지만, 현실 속 제리는 출소 후 내내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환갑의 이른 나이에 아버지 곁으로 떠난 비극적 인물이다.
 
기성세대에게 아버지는 근엄과 권위의 상징이었다.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더욱 그랬다. 자식에 대한 애정은 깊었으나 표현은 서툴렀다. 그러나 권위만큼 아버지의 삶은 녹록하지 않았다. 격변과 혼란이 잦았던 한국 사회에서 더더욱 그랬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헌신한 아버지의 이름은 형언하기 힘든 삶의 무게라는 표현이다. 보릿고개를 넘어 어느덧 살만한 나라가 되었지만 아버지의 고단한 삶은 여전히 인색한 평가에 무디어져 간다.
 
아버지의 이름은 세상에 태어나 두 번째로 배운 단어이자 많이 부른 이름이다. 그래서인지 익숙한 존재에 대한 소중함은 쉬이 자각되지 않는다. 부모의 나이를 먹고 자란 아들은 인생의 위기에서 비로소 아버지의 존재를 깨닫는다. 렘브란트 반 레인의 ‘탕자의 귀환’ 속 아들은 아버지에게 받을 유산을 모두 탕진한 초라한 자로 그려진다. 집에 돌아온 아들을 안아주는 아버지의 눈은 그리움이 켜켜이 쌓인 자의 눈이다. 아버지에게 몸을 맡긴 채 평온을 찾은 듯 무릎을 꿇고 앉은 아들의 모습을 보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목이 메는 이유이다.
 
영화 속, 아버지는 고지식하며 가난한 처지였지만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성실성으로 아들의 삶을 오롯하게 지켜낸다. 세상 모든 아버지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서산에 지는 해처럼 뉘엿뉘엿 경제력과 체력이 빈약한 나이가 들면 자신의 건강에 대한 결정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아버지들을 자주 보게 된다. 자녀들은 치료에 대한 결정권이 마치 권리인 양, 환자의 판단은 도외시한 채, 주도권을 행사하려 한다. 고령의 아버지는 자신의 질환에 대한 수술 여부조차도 결정하지 못한 채 마치 어린아이 취급을 받게 된다. 그래선 안 된다.
 
돌아보면 의사로서의 삶을 지탱하는 지혜는 아버지의 삶에서 기인했다. 거칠고 모진 삶의 방향 고비마다 줏대잡이 역할로 일상을 지탱해 주었던 아버지는 존재만으로도 위로였다. 누구나가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빚이 있다. 모래시계의 눈금처럼 하염없이 건강이 떨어질수록 이별은 가까워지며 그 채무는 상환이 난망해진다.
 
가족에 대한 반듯함을 유지하는 삶의 태도는 지난하다. 그러나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 아버지 삶 속에서 함께한 기억의 용량은 언제 임계점을 맞닥뜨리게 될지 모른다. 쇠잔해져 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곧 들이닥칠 아들의 모습이라고 인정하는 응시와 직시가 필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픈 참회는 잘한 일보다 못한 일만 기억하는 아들의 눈물이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진실의 이름으로!”를 외치던 제리 콘론도 그랬다.

안태환 /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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