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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우리의 사랑은 온유한가?

 사랑에 빠지면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알게 된다고 한다. 최근에 읽었던 글이 떠오른다. 어느 날, 학비를 벌기 위해 집집마다 물건을 팔러 다니던 가난한 소년은 자신에게 남은 돈이 단 한 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몹시 배가 고팠다. 그는 다음 집에 가면 먹을 것을 좀 달라고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젊은 여인이 문을 열었을 때 그만 용기를 잃고 식사 대신 물 한잔을 요구했다. 그녀는 그가 배고픈 것 같아 보여서 큰 우유 한 잔을 가져왔다. 소년은 그것을 천천히 마신 후 얼마의 빚을 졌느냐고 물었다. 당신은 나에게 빚진 것이 없다고 그녀는 대답했다. 하워드 켈리는 그 집을 떠나면서 육체적으로 더 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믿음도 강해졌다.
 
몇 년 후, 그 여인은 중병에 걸려 대도시 병원으로 입원했다. 그녀의 희귀병을 연구하기 위해 전문가를 불렀다. 하워드 켈리 박사는 그 환자의 출신 마을 이름을 듣고 그녀의 방으로 내려가 단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는 그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녀는 살아났다. 마지막 날 청구서를 받아 들은 그녀는 몹시 두려웠다. 거액의 치료비를 지불하려면 남은 평생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계산서를 열었을 때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있는 것을 보았다. “Paid in full one glass of milk.” 하워드 켈리 박사는 1895년,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부인과 종양학의 존스 홉킨스 디비전을 설립한 저명한 의사였다. 가슴 뿌듯한 이야기이다. 모든 선행은 연못에 던진 돌과 같아서 사방으로 파문이 퍼진다는 어느 저널리스트의 말이 떠오른다.  
 
결혼 50주년을 맞은 지난겨울, 친지들과 식구들이 함께 모일 수 없어 집에서 조용히 지내기로 했다. 엄마의 섭섭한 마음을 알아차렸을까? 아이들의 선물이 배달되었다. 콜로라도에 사는 딸아이가 뉴욕에 사는 오빠와 서로 사진을 주고받으며 결혼 50주년 앨범을 만들어 주었다.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콧날이 찡해오도록 행복했다. 보고 보고 또 보았다. 빛바랜 사진 위에 펄럭이고 있는 수많은지난날들이 겨울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건너편에 사는 70대의 유대계 부부, Elliot과 Dina에게도 보여주었다.  
 
이튿날 아침, 도어벨이 울려 문을 열었더니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lliot과 Dina가 12송이의 분홍색 장미꽃다발을 각각 한 아름씩 안고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를 보자마자 “Beautiful 50 years!”라고 소리 지르며 Elliot은 남편에게, Dina는 나에게 꽃다발을 각각 안겨주는 것이었다. 얼마나 신선한 충격이었는지 한동안 멍하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들은 사위의 아파트에서 사는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경쟁에만 몰두하며 사는 이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 없었다. 단순하고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꽃다발을 안고 서 있는 노부부의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모습은 진부한 일상을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킨 순간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해 주는 것이 사랑이며, 보이는 것을 더 선명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만이 사람을 자연스럽게 살게 해주는 것이다. 자의식에 빠진 사람은 세상의 진리를 잘 보지 못한다. 내 사랑은 온유한가? 이기적이지 않고 배타적이지 않은가?” 고찬근 신부님 단상집에 있는 글로 끝을 맺는다. 우리의 사랑은 온유한가?

이춘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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