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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누명' 이철수 다큐 (이철수에게 자유를)…선댄스 영화제서 상영

한인 2세 2명이 공동 제작
23·24일 온라인 관람 가능

 살인 누명을 썼던 이철수씨는 늘 자유를 원했다.  
 
그 갈망이 필름 속에 담겼다.
 
세계 최대 독립영화 축제인 선댄스 영화제에서 이철수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Free Chol Soo Lee(이철수에게 자유를)’가 방영된다.
 
이철수 씨는 70~80년대 한인사회를 비롯한 전국에서 민권 운동의 상징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선댄스 영화제측은 이번에 한인 감독 줄리 하, 유진 이씨가 이철수 씨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을 다큐멘터리 부문에 초청했다.
 
이씨는 지난 1973년 6월 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중국인 갱단원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었다. 당시 한 백인 관광객의 잘못된 진술이 그의 삶을 옭아맸다. 당시 여자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다가 무고하게 체포된 20대 청년의 이씨는 어떠한 물증도 제시되지 않은 재판에서 결국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의 삶은 그 지점에서 다시 한번 꼬인다.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이씨는 1977년 10월 8일 함께 수감중이던 백인 나치주의자 갱단원 모리스 니드햄을 죽이게 된다. 이씨를 죽이기 위해 모리스가 칼을 휘둘렀고 이씨는 살아남기 위해 그를 죽인 것이었다. 그러나 정당방위였음에도 이씨는 또 재판을 받았고 이번엔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당시 일본인 친구(야마다 란코)가 이씨의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구명운동을 벌였고 이후 새크라멘토유니언지에서 활동했던 이경원 기자가 이씨의 사연을 보도하면서 전국적인 이슈가 됐다.
 
이후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구명운동의 물결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전국에서 ‘이철수에게 정의를 찾아주자’라는 캠페인이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결국, 1983년 3월 28일 이씨는 억울한 살인누명으로 체포당한 지 10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됐다. 이후 청소년 선도 등 강연 활동 등을 해오다가 지난 2014년 혈관폐색으로 숨을 거뒀다. 이 사건은 미국 내 소수계 민권운동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선댄스 영화제는 팬데믹 사태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이 작품은 선댄스 영화제 웹사이트(https://festival.sundance.org/#)를 통해 볼 수 있다. 티켓을 구입(20달러)하면 23~24일 사이 온라인 스트리밍을 통해 관람이 가능하다.
 
한편, 이번 다큐멘터리 영화를 공동 제작한 줄리 하씨는 UCLA 졸업 후 미주 영문 한인 잡지였던 코리암 저널의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유진 이씨는 브라운대학을 졸업한 뒤 뉴욕타임스에서 비디오 저널리스트로 활동해 왔다.

장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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