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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양간도’의 불편한 진실

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은 재미 동포사회를 ‘양간도(洋間島)’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만주의 북간도(北間島)에 빗댄 말이다.
 
양간도? 조국과 서양 사이에 떠있는 섬,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한인사회를 낮잡아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살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여러 모로 새겨봐야 할 상징적이고 절묘한 비유임을 느낀다. 내키지 않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양간도, 맞는 말이다. 우리는 섬이다, 외로운 섬. 미국땅 한 귀퉁이에 고달프게 떠있는 섬,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여기에도 못 미치고 저기에도 못 미치는 어정쩡한 섬, 그래서 외롭고 고달프고 서러운 양간도 주민이다.
 
섬 살림은 고달프다. 조국과 미국 사이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 끼어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아야 하니 늘 긴장해야 한다. 균형이 깨지면 적응에 어려움을 겪어야 하고, 아니면 어설픈 미국 사람처럼 일그러지게 된다. 그렇다고 완전한 미국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서럽다.
 
하지만 서럽다고 주저앉아 한탄이나 할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일은 이 양간도를 축복의 섬으로 만드는 일이다. 사이에 끼어 있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양쪽을 이어주고, 모두를 포용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양쪽을 든든하게 이어주는 연결고리, 그것이 우리의 몫이다. 양쪽을 이어주려면 우선 내가 바로 서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양간도에는 본질적인 ‘불편한 진실’이 한 가지 있다. 한인커뮤니티가 지금처럼 계속 발전을 거듭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국 이민이 계속 줄어들고, 새로운 이민이 오지 않으니, 한인사회가 빠른 속도로 노령화하고 쇠퇴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앞날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대비해야 한다. 유대계처럼 완전히 미국 사회에 녹아들어 살면서 민족적·정신적 정체성을 고집스럽게 지킬 수도 있고, 차이나타운처럼 요란하게 드러내 놓고 개성을 강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일본 커뮤니티와 비슷한 운명일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아무튼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
 
바람직한 방향설정을 위해서는 1세와 2세들이 활발하게 소통하고, 함께 공부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문화예술도 이런 현실을 직시하고 준비해야 한다. 특히, 언어를 다루는 문학이나 연극 같은 분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한글로 된 문학은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줄어들 테니 설 자리가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방향전환이 불가피하다. 영어로 쓰든가, 한국의 독자를 대상으로 작품을 쓰든가….
 
아마도 영어로 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어로 쓴 작품도 한국문학인가라는 문제는 별개로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지만 아무튼 주인공은 당연히 2세, 3세들이다. 당연히 앞날의 계획이나 방향 설정은 2세, 3세들을 주역으로 설정하고 세워야 한다.
 
2세들에게는 다인종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 확립이 중요하다. 이들은 우리 같은 ‘교포’나 ‘재미한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난 미국사람인데도 사회생활에서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고, 부모 세대나 비슷한 갈등을 겪는다. 그래서 정체성과 자신감이 중요한 경쟁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확신이 없이는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없다.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우리 2세들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이들을 위해 판을 깔고, 마당을 펼쳐주는 것이 1세들의 의무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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