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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지구에 대한 예의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로서 늘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문제는 그 생각의 내용이다. 생각은 성숙한 생각과 미성숙한 생각으로 나뉜다. 우리는 성숙한 생각을 지혜라고 부른다. 이런 생각은 복을 불러오고 사회를 번성케 한다. 반면 미성숙한 생각은 파국을 불러오고 수많은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이끌 수도 있다.
 
흔히 하는 미성숙한 생각 첫 번째,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말인데 이는 망언이다. 가난에 대해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종종 있었다. 가난은 팔자다, 게으른 자들의 운명이다 말한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혐오하고 가난에 대해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오미크론이라는 변종 바이러스가 남아공에서 시작되었다는 보도를 보면서 그곳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는 남아공이 유럽풍의 도시화한 관광지라고 알고 있다. 물론 도시들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곽에는 임시축사 같은 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어마어마한 빈민촌이 있다. 공용화장실 앞에는 길게 줄을 서야 한다. 그곳이 바로 오미크론의 발생지다.  
 
흔히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을 선행을 베푸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더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면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하지 않으면, 그들을 더럽고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무시하고 방치하면, 가장 먼저 생기는 것이 극우파들이 그토록 거부감을 느끼는 공산주의자들이고 그다음에 찾아오는 것이 전염병이다. 그리고 공산주의보다 무서운 것이 전염병이다. 그래서 가난 구제는 가진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서서 해야 하는 중차대한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다. 일부 식자들은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빈정거리며 비웃는다. 예수의 그 말은 예수쟁이들이 공염불하듯이 하는 말, 종교적 허언이 아니라 인간생존의 길을 알려주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아야 나의 건강함도 지킬 수 있다는 아주 현실적인 이야기다. 미성숙한 생각 두 번째,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오래도록 자화자찬용으로 사용되어온 말이다. 사전학자 에밀 리트레는 짐승은 인간종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고 했다. 인간이 짐승보다 낫다는 것이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동물은 이성에 따라 사고할 수 없기에 한낱 기계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에 말에 의하면 이성을 가진 인간은 동물들과 달리 멍청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우선 인간이 이성적이라는 생각부터 틀렸다. 인간은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존재이다. 집단선동에 잘 넘어가고, 광고에 잘 빠져들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것이 인간이다. 또한 인간은 여러 명분으로 같은 인간종족을 학살한다. 때로는 민족이라는 명분으로, 때로는 정의라는 명분으로, 때로는 종교라는 명분으로. 말도 안 되는 명분으로 학살을 주도하는 자들에게 현혹되는 것이 인간이다.  
 
히틀러 같은 사악한 존재들이 기승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이성적인 면보다 단세포적이고 충동적인 성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심리학자 자크 보클레르는 인간의 역사는 멍청이들의 역사라고까지 혹평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생각하는 자들이 하는 가장 멍청한 생각은 지구가 인간의 것이라는 생각이다. 여기에는 지구가 생명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구는 생명체이고 인간은 이에 기생하는 존재이다.
 
이미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해 여러 사람이 지적한 것처럼 코로나는 지구가 인간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이다. 내 몸 위에서 살면서 예의를 지키라는 경고인 것이다. 종말론자들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노아의 홍수 같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종교적 겁박을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은 대부분 광신도이지만 그저 종교적 망언으로만 치부할 일은 아니다. 바로 코로나가 그런 심판의 일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좋은 백신이 나오면 코로나는 종식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인간이 지구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않는 한, 지구에서 핵실험과 전쟁과 오염질을 멈추지 않는 한 더 지독한 전염병이 계속 돌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인간들도 해충은 박멸하려 들지 않는가.
 

홍성남 /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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