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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우리 속의 세계

오는 7월에 막내가 결혼한다. 딸이 결혼한다고 하니까 우선 걱정이 ‘결혼식에 뭘 입지?’였다. 큰딸이 엄마가 입을 멋진 드레스를 그 전에 사주겠다고는 했지만, 사실 요즘 패션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처럼 복고풍 좋아하는 사람은 옷 고르기가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옷장을 정리하면서 보니 20년, 30년 전에 장만했던 옷들이 오히려 지금 입어도 손색없어 보여서 만일 마땅한 드레스를 고르지 못할 경우, 옛날 옷들을 입기로 작정했다.
 
TV 프로에 영화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 배우 이정재가 출연한 것을 보았다. 이정재는 그 나이에 다리가 꼭 끼는 광택 있는 가죽바지를 입고 나왔다. 이정재는 10년, 20년 후에도 그런 가죽바지를 입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한다. 패션의 완성은 옷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그렇게 말하는 그를 보면서 아, 이 배우는 늘 젊게 살고 싶구나! 싶었다.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은노장 배우 오영수 옹이 생각났다. 골든글로브 한국 배우 최초 수상자인 그는 “내일 연극이 있다. 그 준비가 나에게 더 중요한 일이다”라며 인터뷰 제안을 단박에 거절했다. 작품의 주제를 희석한다고 치킨 광고도 거부한 그다. 요즘 그의 일상생활도 전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매일 아침 평행봉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경기도 성남 집에서 공연장인 서울 대학로까지 왕복 세 시간을 지하철로 이동한다는 소식이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가족들과 함께 식사할 때’, 가장 좋아하는 말은 ‘아름답다’”라는 그는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다. 우리 문화의 향기를 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슴 깊이 안고, 세계의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란다”는 수상 소감을 전했다. 연극배우로 50년 넘게 한국 연극의 역사를 지켜온 그의 곤곤하고 깊은 철학과 자세는 “진정한 승자는 하고 싶은 일을 최선을 다해서 어떤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그의 말로 정점을 찍는다.  
 
엘렌 바스는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한다. 올챙이는 개구리가, 애벌레는 나비가, 상처받은 인간은 완전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성이다”라고 했다. 패션도 결국은 자기가 되고자 하는 한 방편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오버사이즈 옷을 입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몸이 너무 비대해서 그 모습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넉넉하게 품이 큰 옷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막상 큰 옷을 입어보니 생각보다 장점이 많았다. 우선 정확한 몸매가 드러나지 않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몸이 옷 안에서 많이 자유롭다. 이젠 티셔츠 같은 것은 아예 두 사이즈 큰 것을 산다. 겨드랑이만 줄이면 튀어나온 배나 굽은 어깨 등, 몸의 단점이 커버되면서 낙락하니 옷이 아래로 떨어지면서 보기에도 촌스럽지 않다. 요즘은 오히려 그런 스타일이 핫! 하다.  
 
자유로워진 몸은 뒤집어 생각하면 집착으로부터의 자유일 수도 있다. 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오는 것이고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우리는 궁극적인 행복을 만나는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그것이 중도(中道)이고 무심(無心)이며 열반(涅槃)이고, 상락아정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는 좋아한다.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라는 오영수 옹의 말은 패션 철학과도 찰떡궁합이다.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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