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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영화 ‘돈 룩 업’과 ‘설득의 무효함’

모두가 사실을 소유한 시대다. 누군가 당신을 설득하려 한다면, 반박할 재료가 한가득이다. 내 마음에 드는 정치인을 찾거나,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유튜버는 검색하면 금방 나온다.
 
사실을 의견으로 치부하며, 설득은 어림도 없다는 다짐으로 시작하는 대화. 지난해 취재 현장에선 이런 사람들을 유독 많이 만났다. 기자는 사실을 전달하는 직업인데, 사실로도 상대방의 마음을 열지 못하니 무기력해졌다. 미국 SF작가 로버트 A 하인라인은 “편견에 호소해 천 명을 움직이는 게 논리로 한 명을 설득하는 것보다 빠르다”고 했다.
 
이런 ‘설득의 무효함’은 올해 대선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양당 후보 모두 지지층만 단단히 결집하려는 모습이다. 후보들의 행보를 보면 반대 진영에 대한 설득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가끔 과감한 발언도 등장하지만, 곧 다시 주워 담는다. 그때마다 평론가들은 “내 진영의 지지자들은 돌아서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던져보는 전술”이라 해석한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돈 룩 업(Don’t Look Up)'의 감독 아담 매케이도 비슷한 메시지를 던진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거대한 혜성이 6개월 뒤 지구를 멸망시킨다는, 특별한 것이 없어보이는 영화. 하지만 이 영화엔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메릴 스트리프, 제니퍼 로런스와 티머시 샬라메까지 잘나가는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이들은 거대한 재난조차도 '공통된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열하는 망가진 미국을 절실히 연기한다. 대중을 현혹하는 정치인들은 혜성이 떨어질 하늘을 올려다보지도 말라는 '돈 룩 업'이란 구호를 멸망 직전까지 외친다. 매케이 감독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우린 더이상 서로 대화할 수도, 심지어 동의라는 것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말했다.
 
지금 우린 어떨까. 과거였다면 돌이킬 수 없을 수준의 의혹과 실언에도, 대선 후보를 결정한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후보와 정당을 넘어서 이젠 진영 내 지지자들 모두가 각자의 진실을 들고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각개전투 중이란 생각도 든다. 사회 분열을 연구해 온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 버지니아대 교수는 “우리는 서로를 실존적인 위협(existential threat)으로 바라보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돈 룩 업'에서 혜성을 발견한 천문학자 랜달 민디(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교수는 유명 토크쇼에 나와 이렇게 호소한다. “에베레스트 산 만한 혜성이 지구에 오는데, 우린 최소한의 합의도 못 하고 처 앉았으면 어떡해요. 어디가 망가진 거예요? 기회가 있었을 때 혜성 궤도를 틀었어야지.”  
 
모두가 진실을 외치는 시대에 궤도를 틀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올해 우리는 지난해보다 나아질 수 있을까.

박태인 / 한국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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