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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낙상 사고

낙상 사고를 당했다. 윌셔 길의 대형 광장에서다. 물이 모두 빠져나가고 허옇게 바닥을 드러낸 분수대를 보며 마음이 심란했는데도 잠깐 사이 그걸 잊어버렸다. 셀폰에서 전화번호를 찾으며 걷다가 그만 한쪽 발을 그 속에 집어넣고 말았다. 깊이가 무릎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허공을 디딘 오른쪽 발은 내 온 몸을 큰 대자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얼른 몸을 추스리고 훑어보니 사지는 멀쩡하다. 팔꿈치가 쓸려서 피가 조금 나올 뿐 뼈는 부러지지 않았다. 다행히 셀폰도 손에서 튕겨나가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넘어진 김에 쉬어가라고 앉은 김에 전화나 걸고 나가자. 나는 벌러덩 무릎 위까지 올라간 바짓가랑이는 잡아 내리고 벗겨진 구두를 주워 신고는 시멘트 바닥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았다. 햇볕에 달궈진 시멘트가 뜨뜻한 게 온돌방 같다.  
 
따끈한 엉덩이의 느낌을 즐기며 전화번호를 찾는데 중년의 백인 여자와 히스패닉 남자 얼굴이 파란 하늘에 두둥 떴다. 올려다보는 나와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의 숨소리가 무척 크다. 내가 놀란 것만큼 이 사람들도 놀란 모양이다. 멍청한 여자가 분수 속으로 쑥 빠져 나오지 않으니 그들의 상상력이 얼마나 발휘되었을까. 마치 911이라고 외칠 기세다. 괜찮은데…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내밀어주는 여자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인간관계에서도 낙상 사고를 당할 때가 있다. 조심을 하는데도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대형 사고가 터지기도 한다. 전혀 나와는 무방한 일에 휘말려서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하고 믿거니 하고 주고받은 작은 걱정이 커다란 실타래로 뭉쳐져 돌아오기도 한다. 거기에 누군가의 악의적인 조작까지 더해진다면 그 폭발력은 대단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슬아슬 누비면서 산다. 믿을 수도 없고 안 믿을 수도 없는 애매모호한 인간관계까지도 유지하면서 살아야 한다. 사고는 그 아슬아슬 애매모호에서 생긴다. 모든 희로애락도 그 사이에서 피어난다. 기뻐하고 즐거워만하며 살 수 있다면 누가 천국을 동경하겠는가.  
 
새로운 한 해를 꿈꾸는 시간이다. 지나간 시간에는 큰 낙상 사고가 없었는지 돌아본다.  
 
만일 내가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다면 그건 타인 때문이 아니다. 내가 그 상처를 받아 안았기 때문이다. 뭔가에 걸리거나 넘어진 것은 내 잘못이기에 그 부분만 반성하면 된다. 뭉친 감정은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히 떠나보내면 될 일이다. 나를 가두는 것은 감옥이 아니라 생각이다.  
 
내게로 쏟아지는 비난은 내 인생을 강탈해가지 못한다. 오히려 내 안의 자아를 길러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설령 낙상을 했더라도 내가 필사적으로 셀폰을 잡고 놓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잃지 말아야한다.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도 내 손가락의 아픔보다 크지 않기에 누구에 의해서도 내 삶이 어질러질 이유가 없다. 아파하는 마음의 미세한 부분을 위로하며 내가 나의 천사가 되어주면 된다.  

성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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