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다시 무너진 철책 경계
정초부터 전방 철책이 뚫렸다.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강원도 동부 고성지역 육군 22사단 최전방 철책선을 통해 민간인 1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월북했다. 얼마나 경계가 허술했으면 숱한 현대적 장비와 철통 같은 무장병력이 감시하는 철책을 뚫고 북으로 넘어갔는지 어리둥절할 뿐이다.군의 경계 근무 구호에 ‘작전 실패는 용서해도 경계 실패는 용서 못한다’는 말이 있다. 특히 군사분계선이 있는 비무장지대(DMZ) 내의 경계는 한 시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군지휘부가 평소 평화를 강조하는 동안 경계 작전에 임하는 기초 군기가 허물어졌다는 지적이 안 나올 수 없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2월 22사단 ‘헤엄 귀순’ 당시 “22사단은 철책과 해안을 동시에 경계해야 하고 작전 요소나 자연 환경 등 어려움이 많은 부대”라며 “해당 사단에 대한 정밀 진단을 하겠다”고 했다. 그때 CCTV 등 철책 센서는 귀순자 동작을 감지하고 경보를 울렸다. 기계는 정상 작동했지만 현장에 출동한 초동 부대는 철책이 훼손된 흔적이 없다는 이유로 이상이 없다고 보고했다.
지난 1일 오전 국방부 장관은 공군기에 직접 탑승해 신년 지휘비행을 하면서 한반도 전역의 대비 태세를 점검한 후 전군에 위국헌신의 자세로 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주기 바란다고 훈시했다. 그리고 수시간 뒤 최전방 경계가 뚫렸다.
‘헤엄 귀순’ 당시에도 경보음이 2번 울리고 CCTV가 귀순자를 10번 포착했지만 놓쳤었다. 이번은 경계 실패의 재판이다. 이후 오작동을 줄이겠다고 대대적인 보강 대책을 발표했는데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합참 관계자는 미흡한 점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면서도 구체적인 개선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군이 초래한 인재라는 비판에 이의가 없다. 첨단기계를 갖다 놓아도 사람이 제대로 쓰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여러 차례 경계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번엔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은 혹평했다.
한 정치인은 “이번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GP 패싱’”이라고 지적했다. 현 정부는 2018년 말 남북 각각 11개씩의 GP를 시범 철거했다. 북한은 160여 개, 우리는 60여 개의 GP를 운영 중이어서 경계 차질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주적을 주적이라 부르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군은 ‘군사력 아닌 대화’로 나라를 지키는 군대가 돼 버렸다.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과 종전선언 추진 등에 편승해 북한군을 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문제다. 정치권을 의식해 강한 훈련과 군기 확립보다는 책임 부담이 적은 안전 위주로 운영해 오는 군의 자세도 문제다. 군대가 본분을 잊으면 국가 안보가 위험해진다. 종전은 정치가 하는 게 아니라 강한 군대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재학 / 6.25참전유공자회 수석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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