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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다시 뛰는 가슴으로

이기희

이기희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기억하고 싶은 것뿐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는 것은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지난 이년 동안 병마와 가난, 고통과 슬픔을 견디며 맨땅에 헤딩하듯 살아왔다. 배 만 고프고 허기진 게 아니라 심장이 오그라드는 불안과 절망으로 영혼이 지치고 어둠 속에 갇혔다. 코로나 팬데믹은 우리의 기억 속 아름다운 날들과 사랑의 추억마저 멍들게 했다. 꿈 희망 소망 믿음 기쁨 행복이란 단어들이 사라졌다. 불안과 공포의 장막 속에서 고삐 물린 소처럼 죽음과 사투를 벌였다. 아름다운 날들이 슬픈 기억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하얀 소의 해’ 신축년(辛丑年)이 가고 ‘검은 호랑이 해’ 임인년(壬寅年)이 밝았다. 검은 호랑이는 명예욕이 강하고 큰 야망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희망을 유보한 사람들은 더 이상 명예와 야망을 꿈꾸지 않는다. 그냥 살고 싶을 뿐이다. 죽을 때까지는 안 죽는다. 살아있는 동안은 사람답게 살고 싶다. 가족들 무탈하고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고, 친구들과 맛난 음식 나눠먹고, 이웃 만나면 함박꽃처럼 웃으며 손 흔들고, 별사탕처럼 빛나는 애들 눈동자에 달콤한 꿈의 단어들을 새기며 그대 눈 속에 남아있는 사랑의 언약을 기억하고 싶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 되느니라”- 마태복음 9:17절
 
엎질러진 물은 주워담지 못한다. 맑고 깨끗한 새물로 새날을 채우는 사람은 희망의 문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 동안 육신만 지치고 고달픈 게 아니라 영혼이 배고프고 메말랐다. 배가 고프면 먹으면 되지만 영혼이 갈급하면 무엇으로 어떻게 채울까. 마음이 허허로워지면 불안과 공포, 의심이 생기고 우울증에 걸린다. 믿음과 사랑이 사라지고 만남을 기피하고 자신을 어둔 방에 가둔다.  
 
어제는 흘러갔다. 어제가 아무리 힘들고 아파도 내일은 내일의 시간이 온다. 오늘을 참고 견디면 기적처럼 내일은 반드시 온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중략) /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김수영의 ‘풀’ 중에서
 
마지노선도 무너진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 육군장관 마지노는 독일의 침공을 막기 위해 140킬로미터에 걸쳐 두께 30미터가 넘는 콘크리트 벽을 구축했지만 독일의 침공을 막지 못했다. 마지노선은 ‘최후의 방어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뜻이다.
 
인생의 마지노선은 없다. 선택이 있을 뿐이다. 죽는 것 빼곤 못할 것이 없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백번 천번 더 일어났었다. 기억의 창고를 열고 사랑과 희망이 담긴 날들을 기억하겠다. 하얀 손수건 가슴에 달고 꿈이 뭉게구름처럼 번지던 유년의 입학식. 늘 푸른 측백나무는 둥글게 다진 황토빛 운동장을 감싸 안았다. 하얀 이 드러내고 웃던 소년과 동그란 눈망울의 계집아이도 기억해 낼 테다.
 
심장이 뛴다. 밝음으로 어둠을 덮고 희망으로 절망을 이기는 날들 위해 바람보다 태양보다 먼저 일어나 웃고 속삭이는 날들을 간구한다. (Q7 Fine Art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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