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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 해질녘 시간대의 매혹

최선주

최선주

이야기가 살아있는 곳은 명소가 된다. 여러 사람들이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찿아가는 곳. 그런 곳에서 만나지는 이들은 왜 그곳에 있는지 서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함께 공유한 내용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한 장소가 명소가 되는 이유는 비록 허구일지라도 함께 공감하는 낭만과 감상이 있어서이다. 동시대인들에게서 느끼는 연대감, 친밀감, 그리고 연민은 서로 공유한다고 믿어지는 문화, 시대의 사건 등을 삶의 배경으로 나누어 가진 탓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신뢰감 또한 비슷한 기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책을 선물로 주고 받는 것은 비록 파편적으로나마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가는 노력일 수 있다.  
 
누구나 한번쯤은 낯선 사람이 한눈에 친근하게 다가오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무심코 돌아보는 시선이나 우수 어린 자태, 어딘가를 바라보고 서있는 무아지경의 옆모습 등, 한 순간의 모습에서 자신에게 익숙한 이야기의 실마리를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자연을 대할 때에도 그런 순간은 종종 찿아 온다. 나무가 서있는 오르막 등성이를 보며 걷노라면 고개 넘어 익숙한 마을 풍경이 연상될 때가 있다. 시공을 초월한 기억과 상상의 혼재 현상이지만 여전히 정답고 평화로운 느낌으로 실제가 된다.  
 
햇살 넘치던 하루가 기울어가는 오후가 되면 급히 방문해야 할 곳이 있는 듯 서두르는 마음으로 차의 시동을 걸곤 한다. 해질녘 두어 시간대의 매혹은 그 어떤 표현도 설명도 불가하다: 추억하는 모든 감상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시간,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서 들었던 내장산 여행길의 저녁나절 풍경처럼 여행지에 있는 듯한 시간, 시제를 드리고 소 달구지를 타고 돌아가던 길에 보았던 과수원 사과나무 사이로 번지던 불타던 하늘, 영상으로 담고 싶어지는 시간, 공중에 나는 새떼를 좇아가고 싶은 시간, 해 그림자가 일렁이는 처마에서 그리움을 읽어내는 시간, 마음을 내어주고 햇살을 들이고 싶은 시간, 기억의 배경에 가라앉아 있던 이야기들이 활동사진처럼 살아나오는 해질 무렵은 바야흐로 마음의 방랑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어둠이 물처럼 밀려들어 황금빛 햇살을 점점 위로 떠밀어가다가, 키 큰 나무가지의 꼭대기에만 남겨둔 풍경을 좇아 서향으로 천천히 차를 몰곤 한다. 일리노이 하이웨이 웨스트 90을 타고 가다가 20번 국도로 가는 길은 정 서향으로 난 길이다. 그 길을 타고 석양에 갈레나에 닿도록 출발한다면 평원에 내리는 석양을 만끽할 수 있다. 20번 국도에서 락포드 공항으로 인도하는 2 S로 빠지면 Rock River 를 따라 딕슨 쪽으로 주욱 이어져 강변 드라이브코스로 명명해도 좋을 멋진 길을 만난다.  
 
이민생활에서 드라이브는 자가치료제다. 동무가 없어도 혼자서 외롭지 않게, 때론 당면한 삶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도록 기억나는 과거와 상상되는 미래의 온갖 미학의 세력을 다 소환해내는 감성의 도구로 드라이브 쎄라피를 생각한다. 나이가 들어 걸음이 힘겨워진다면 이미 해 저문 인생길일 것이다. 노년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외로운 행로다. 그러나 모든 것의 마지막은 항상 정점의 이면임을 생각한다.
 
석양이 구차하지 않고 슬프도록 아름답듯이. 물질은 크게 세가지 성향으로 나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불에 가까이 대면 타들어가는 가연성 물질, 불에 대도 타지 않는 불연성 물질, 그리고 스스로도 잘 타는 자연성 물질이다. 사람에게도 이 세가지 성향을 적용해 볼 수 있다. 주변의 영향을 받으면 행동하는 인간 유형, 좀처럼 함께 타지 않고 다른 사람이 가진 불씨마저 꺼뜨려버리는 불연성 인간 유형, 그리고 스스로 행동에 옮기는 자연성 인간 유형이다. 자신에게 친숙한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는 자연성 인간이 언젠가 한번은 본듯한 가연성 인간을 만나면 소통이 되어,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나이에 무관하게 스스로 타고, 또 함께 탈수 있는 성정으로 해 저무는 한해를, 그리고 인생을 완성해 가기를. 정녕 해질녘 시간대의 매혹으로 물드는 삶이기를. [종려나무교회 목사, Ph.D www.palmtreechurch.org]

최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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