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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신발 끈을 풀다

 하루의 산행을 마치고 야영지에 들어서면 해는 능선 너머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조였던 허리띠를 느슨하게 늘이며 앉을 자리를 찾는다. 아침 시간 출발할 때는 온몸 여기저기를 조이고 묶고 이런저런 도구를 걸치고 그러고 나서 거치른 초목이 우거진 산길을 헤쳐나가기 시작한다. 잠시 쉬는 시간에도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짧은 숨 고르기만으로 지쳐가던 몸을 추스른다. 그렇게 하여 일행과 떨어지지 않게 부지런히 앞으로만 걸어가다 보면 때로는 주변에 괜찮게 펼쳐진 경관을 놓치는 때가 많지만 팽팽하게 땅겨진 근육이 있어 힘든 산길을 이기고 나갈 수 있다.  
 
 해지는 시간 내일을 생각하며 편안함을 만드는 시간이 귀중하다. 걸쳤던 여러 가지 도구들을 풀어 내려놓고 몸을 단단하게 유지하던 단추를 풀고 지펴도 내리고 편안한 호흡으로 저녁을 맞는다. 맨발을 보호하고 힘있게 내딛게 하던 신발에서 그 맨발을 해방하는 시간이다. 본래 맨발로 다니던 것이었으나 어쩌다가 발싸개와 두꺼운 등산화 없이는 숲길을 다닐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들의 습관으로 갑갑해 하던 발이 그나마 자유로운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마련된 누울 자리에 몸을 던지면 그때야 내 옆에 내 앞에 내 위를 둘러싸고 있던 자연과 온전히 만날 수 있다. 피곤함이 달콤한 잠속으로 이끌어가는 사이 별빛과 숲과 나무의 풀냄새와 밤공기의 촉촉함이 온몸을 감싸고 돈다. 근심이나 걱정이나 싸움과 경쟁과 같은 우리를 긴장시키던 모든 것들에서 놓여나와 길지 않은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오롯이 소유하는 시간이다.
 
 허락되었던 한 해가 능선 넘어 사라지는 붉은 해와 노을처럼 특별한 여운을 만들며 저물고 있다. 야영지를 찾아드는 듯한 이 끝 무렵의 시간은 우리를 별다른 휴식으로 이끌고 있다. 어쩐지 익숙하고 낯익은 자리로 돌아온 듯한 안도감으로 몸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마치 돌아와 거울 앞에 앉은 누구와 비슷한 마음도 일어난다. 혹은 더 과장하면 돌아온 탕아 같은 심정이 되기도 한다.
 
세상살이라는 동네로 나아가 눈앞에 펼쳐지는 여러 모양의 신작로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좋고 나쁜 이야기를 만나고 만들어내며 상처 주고 상처받는 세월을 지내온 뒤에 갖게 되는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의 밑그림이다. 돌아와 앉은 그곳에서 모든 것을 벗어버리고 정말 만나야 하는 우리들의 참모습을 찾아내는 자리이다. 거울 속에서 보이는 그때의 모습과 옛집에 돌아와 안식을 만나는 탕아의 모습에서 한 해를 살아낸 우리들의 숨찬 발걸음을 다시 보면 한 해의 산행이 좋은 결말로 다가올 듯하다.  
 
 여전히 우리가 살아내야 할 시간은 긴장을 강요하고 있다. 건강을 잡아먹는 병마는 자꾸 모습을 바꾸어가며 달려들고 있고 하루하루 살아내는 길을 찾아내야 하는 강박감은 소리 없이압박하고 있다. 뒤처지지 않아야 하는 달음박질은 잠시도 멈추어 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들녘에 버려진 먹이 한 덩어리에 달려드는 들짐승같이 틈을 주지 않고 들러붙어 걱정이 걱정을 낳는. 두려움이 되어 걱정 없음을 허용하지 않는 세상살이는 한 해의 끄트머리에도 물러날 기색이 없다. 그러나 많은 보호장구와 도구를 들고서야 안심하던 무사가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무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자신의 참된 힘을 찾는 짧은 순간 그때의 평온함이 세상을 이겼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돌아와 앉아 짐을 내려놓고 조였던 신발 끈을 풀면서 새로운 내일을 바라보는 것이 한 해를 용감하게 지나온 사람의 자세일 것 같다. 신발 끈을 풀어내며 말해본다. “수고했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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