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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닥터 지바고

 나와 나, 2분의 1쯤에 있는 감성과 조우 중인 아침이다. 부엌 창문으로 들어와 내 주위를 누비는 차가운 공기가 반가운 손님 같다. 그 찬 손님과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주한다. 내가 허락한 틈으로 그만큼만 들어올 수 있는 차가움은, 오직 내가 가진 따뜻함의 대비를 원할 때뿐이라는 것과 아침에 의식처럼 통과하는 커피 한 잔은, 내가 허락한 만큼 하루에 펼쳐질 각성을 품고 있다는 것. 이런 별것 아닌 습관이 소우주를 조율하는 권력자처럼 느껴지는 건 간밤에 보았던 영화의 여운 때문인가 보다.  
 
‘닥터 지바고’라는 오래된 영화였다. 겨울날 아랫목에 둘러앉아 가족들과 보았던 주말의 명화가 생각나서,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 좋았다.  
 
영화는 닥터 지바고의 이복형이, 여주인공 라라와 지바고 사이에 낳은 딸로 추정되는 젊은 아가씨를 심문하면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라라와 닥터 지바고의 엇갈리는 사랑의 서사가 눈밭의 얼음으로 매달려 있다가, 누가 몰래 내 등 옷 속에 넣은 것마냥 시리게 다가왔다. 배경이 되는 20세기 초 러시아는 1차 대전과 그 뒤를 이은 볼셰비키들의 혁명으로 내전을 겪는다. 3시간이 넘는 한 편의 영화로 러시아의 역사, 사상, 철학을 알 수 있는 시대극이다.  
 
러시아의 광활한 눈밭과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 등, 거대한 긴 호흡을 유도하다가, 의사이자 시인인 지바고의 시선으로 자연의 소곤거림을, 결이 섬세하게 표현한 장치들이 마음을 꽉 차게 했다. 희망이 창백하게 질려 있는 순간에도, 지나가는 구름과 한 줄기 바람에 맞대응하는 찰나의 미소, 또 글을 쓰는 문학적 순한 맛이 혁명을 이겨내는 진정한 승리자였다. 때로는 저항할 수 없는 힘, 이것이야말로 삶에 진실일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뒤를 돌아보던 조카를, 근엄한 군인 삼촌이 이해가 담긴 미소로 바라보는 모습에서, 잘 달궈진 눈물이 내 볼을 타고 뚝 떨어졌다. 역사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가슴 아픈 주인공들의 남아 있던 사랑을, 잘 다듬질하는, 삼촌의 사랑이 크나큰 인류애로 느껴진 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겨루는 전쟁 중에서도 인간은 서로에게 치료제가, 회복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최고의 마약은 인간이라고 한다.
 
내가 일상에 누릴 수 있는 것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쓸 수 있는 잔잔한 파동 수의 것들과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백신의 힘마저도 큰 평화임을 생각하는 아침이다.
 
이렇게 잘 만든 한 편의 영화는 맥없는 관객을 설득하는 힘이 있다. 겨울날 툭 하고 건드려지고 싶은 분들에게 ‘닥터 지바고’ 영화 한 편 선물한다.

이원경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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