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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산타 할아비의 기도

사진=한홍기

사진=한홍기

금년도 산타 할아버지는 무척 바쁘셨다. 예전 같으면 연말 크리스마스를 기해 선물을 각 가정에 굴뚝을 타고 들어가 꼬마들 머리맡에 놓고 나오는 것으로 끝냈는데 올해는 연초부터 정신이 없으셨다. 연초에 좀 쉬려나 했더니 심장병을 앓고 있는 꼬마가 연초에 부모님이 코로나에 걸려 혼자 병원에서 울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루돌프를 다시 몰고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꼬마만 돌보기도 그렇고 부모가 입원한 병원도 부득이 안갈 수 없어, 그러다 보니 밀려드는 앰블런스도 모자라 썰매라도 힘을 보태야 했다. 
 
이왕 내친김에 이 집 저 집 다들 잘 있나 둘러보니, 어느 집에서는 꼬마가 기다렸다는 듯 지난번 커피와 도넛을 왜 잡수시다 말고 남겼느냐며 사진을 보여 주는데, 그게 내가 아니라 네 아비가 먹다 남긴 걸 나에게 그렇게 뒤집어 씌운 모양이라고 말하려는 순간, 순진한 눈망울을 실망시킬 수가 없어 그 시간에 눈이 엄청 와 굴뚝이 막히기 전에 다 먹지 못하고 네가 잠자는 얼굴만 보고 나왔다고 변명까지 하고 다녔다.
 
연초에는 그러다 말거니 했더니 계절이 바뀌면서 코로나는 더욱 극심해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이 어려워 미국 전역에 사는 산타 동료들을 전부 불러 환자들을 병원으로 실어 나르기 바빴는데 시카고는 뭔 미시간 호수 바람이 그렇게 센지 썰매가 뒤집히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추운 건 감당하겠는데 썰매가 뒤집히면 루돌프들 고생이 말이 아니다.
 
그리고 오미크론이 들어와 난리를 칠 즈음 이번에는 웬 토네이도가 캔터키를 휩쓸어 도시가 사라지고 건물 뼈다귀만 남았다. 젖꼭지고 기저귀고 애들 물건은 아무 거라도 좋으니 기부 좀 해달라는 아우성을 듣고 가만있을 수가 없어 이번에는 선물이 아니라 기저귀를 잔뜩 싣고 달려갔다. 정말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 엄마는 아이 둘을 끌어안고 이웃 마을까지 날아가 자신은 반 송장이 되었는데도 애들은 다행히 말짱하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기가 차기도 했다. 인간의 모성애는 할 수가 없는 모양이다. 산타 생활 늙도록 다해 봐도 아줌마 인간들에게는 가끔 이해를 못 할 때가 많다. 연약한 몸에서 괴력을 발휘할 때 보면 남편도 종잇장이다. 켄터키는 그렇게 아줌마들이 지금 재건에 앞장서 나가는데 아마 ‘켄터키 여자’라는 신조어가 생길 것이다. 한국 아줌마도 보통은 아니나 요즘은 코로나에 기를 못 쓰고 있다. 그러나 그들도 한번 몸뻬를 입고 발동이 걸리면 날아가는 인공위성도 차 버릴 하이킥이 대단하다.
 
그렇게 연초부터 바빴던 와중에도 코로나 백신을 맞아야 금년도에도 또 굴뚝을 탈수 있다 하여 부스터까지 맞았다. 어제는 커피와 도넛을 남겼다는 그 녀석 집에 가서 깨끗하게 핥아먹고 그 아비에게 다시는 뒤집어 씌우지 말라고 부탁까지 하였다. 오늘 저녁에는 그 심장병 아이에게 갈 예정이다. 다행히 그 부모님이 완쾌되어 아이를 잘 돌보고 있다. 샛별 같은 그 녀석에게는 물론 코로나로 병상에 누워 있는 수많은 환자들을 위해 기도를 할 예정이다.
 
자비로우신 주님, 오늘 저희의 돌봄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오니 그들이 당신의 사랑 받는 자녀이며 그들에 대한 관심과 돌봄이 당신께 봉사하는 일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저희로 하여금 어떠한 상황에서도 병자들의 고통을 먼저 돌보며 이웃의 어려움을 기꺼이 도우셨던 성모님처럼 그들을 위해 당신 은총의 전달자 되게 하소서. 아멘. ([email protected])
 

한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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