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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위대한 탈출을 꿈꾸며

생의 지표가 달라졌다. 오래 살다 보니 탈출의 기회가 온 거다. ‘대량 퇴직(Great Resignation)’의 대열에 나도 합류했다. 꿈 같은 일이다. 죽을 때까지 일에 매달려 허덕거리며 살 생각을 했다.  
 
앞만 보고 달리던 표지판을 치우니 나아갈 길이 훤히 보인다. 벼랑 끝에 몰려도 끄나풀이라도 잡고 싶어 안달했다. 남부럽지 않은 ‘잘난 인생’을 살기 위해  사회·경제적 지위를 이룩하는 것이 성공이라 믿었다.  
 
화랑을 경영하며 얻은 자신감으로 큰 도시로 가서 한판 벌여 볼 생각으로 이사 갈 준비를 착착 진행했다.  
 
근데 웬 날벼락, 근사한 화랑 오픈할 장밋빛 꿈이 코로나로 무참히 박살났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사 갈 준비하며 몇 년 전부터 온라인 판매를 시작하고 도매업으로 바꾼 것. 이사 간다며 화랑 건물을 처분해 경영상 큰 손실을  막을 수 있었다.  
 
다시 낙향(?)해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며 원래 있던 화랑 근처에 새 건물 짓기 위해 팔방으로 설쳐댔다. 애들이 “이제 좀 편안하게 살아요. 나이도 있는데 화랑은 그만 하세요”라고 말렸지만 ‘내 나이가 어때서’를 속으로 열창하며 일축했다.  
 
그래도 화랑 단골 고객들은 ‘돌아온 탕자’를 쌍수로 환영했다.  
 
온라인 장사는 소매상보다 운영이 편하고 투자금도 적고 시간도 절약된다. 이참에 소매 사업을 접을까 말까, 어디까지 축소할까 마음을 굳힐 때까지 하루에 백번도 더 왔다갔다 했다.  
 
결심은 쉽지 않았다. 결국은 물질적인 것보다 비물질적인 것, 만질 수 있는 것보다 만질 수 없는 것, 실체가 없는 것들을 추구하기로 작정했다.
 
‘대량 퇴직’은 산업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노동자들이 회사를 떠나는 자발적인 퇴직 현상을 말한다. 사람들은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고 인생의 중요도가 바뀌었다. 일이 인생의 전부인 것 같은 워커홀릭도 코로나로 인해 건강과 가족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됐다.
 
사람들은 더 이상 회사나 직업에 인생을 걸지 않는다. 펜데믹으로 삶의 우선 순위를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나는 스트레스가 너무 없어 스트레스 받을 지경이다. 소매 화랑 다시 오픈할 생각 접고 반백수로 사는 일이 너무 즐겁다. 내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있어 좋다. 종횡무진 서두를 일 없고, 흡입식으로 삼키던 식사도 우아하게 먹는다. 초저녁에 취침해 눈 붙이고 한밤중에 일어나 칼럼 쓰고 아침에 늦잠 자도 아무도 시비 걸지 않는다. 허겁지겁 도시락 싸들고 화랑 문 열 시간 맞춰 출근할 일 없으니 시간은 항상 내 편이다.  
 
‘세상은 고수들에게는 놀이터고 하수들에게는 지옥이다’라는 영화 속 대사는 틀린 말인지 모른다. 모든 것을 누리는 고수가 되면 스스로를 일 지옥에 가둔다. 하수들은 포장마차에서 순대 한 접시 소주 한잔에 인생을 논한다. 편하게 쉽게 사는 사람이 진정한 고수다. 절벽에서 점프 안 하고 되돌아 설 줄 아는 사람, 위대한 대탈출을 꿈꾸는 자는 고수다.

이기희 / Q7파인아트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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