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주의 살며 사랑하며] 마음보를 다스리는 대안에 대하여
기독교인이 되면 가장 우선적으로 변해야 하는 것이 세상을 보는 관점 즉 마음보다. 기독교인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본성에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입으로 시인할 때 갖게 되는 영성의 두 가지 본성을 갖는다. 일상생활을 할때 육신은 죄성과 약함을 포함하는 인간의 본성을 따라 살려 하고, 마음속에 있는 또 하나의 본성,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신성의 영향을 받는다.
인간본성은 자신에게 집착한다. 자기본위의 사람은 하나님은 물론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 없다.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할뿐 아니라 하나님과 관련된 것을 적대시한다. 자기 자신에게 몰두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시하며 성경은 그것을 부패한 본성이라고 지목하고 본성에 따른 육적인 삶은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경고한다. 여기서의 죽음은 모든 생명체가 경험하는 육신적인 죽음이 아니고, 영혼의 괴멸을 의미한다.
많은 이들이 이 세상이 그들에게 가르친 많은 거짓된 내용을 삶의 정석이나 진리로 알고 살아간다. 남을 따라 살면서 어떤 인생이 잘사는 인생이라는 식의 획일적 선전 즉 거짓에 기반한 판단과 생각 때문에 불행하고 불만족스럽고 혼동된 채 살아간다. 그 거짓의 내용은 이 세상에 속한 영광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사람들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무조건 더 많이 소유하고자 욕망한다. 불행하게도 욕망은 끝이 없다. 참 기독교인의 삶은 그래서 마음 속에 영적인 전쟁터를 둔 삶이다.
신약성경 27권중 무려 13권을 쓴 바울사도조차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충돌을 로마서에서 고백하고 있다:“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 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원하지 않는 생각을 차단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원치 않는 생각을 다른 생각으로 대치할 수는 있다.
신학자인 닐 앤더슨은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오래된 불손한 생각들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도록 바꾸려고 노력하거나 좋지 않은 생각이라고 중단시킬 수는 없다. 분명하고 깨끗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는 일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사람이 거짓의 아비, (사탄)를 극복하는 것은 진리를 선택할 때뿐이다.” 바울사도는 로마서에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의 영은 죽을 몸과는 달리 살아있게 되고, 영에 의해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즉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수는 우리에게 영적인 삶을 살수 있는 세가지 단계로, “내게 오라,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다. 두 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이 교회이며, 함께 예배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먹으며 삶을 축하하는 친밀한 공동체를 형성할 때 의미가 있다. 그것이 교회와 일상이 조화되는 신앙생활이다. 저마다의 개성을 유지한 채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고자 노력하는 것이 신앙여정이며, 모든 크고 작은 결정은 마음속에 있는 인성과 신성의 두 가지 본성이 충돌하여 일어나는 치열한 갈등의 결과물임을 인정할 때만 건전하고 깨어있는 신앙이 된다.
19세기인들과는 달리 바람처럼 먼지처럼 사라져간 사람들의 모습과 목소리와 영상을 생시처럼 생생히 다시볼 수 있는 것을 당연시하는 현대인들처럼, 기독교인은 사람의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믿음은 선물이며 은혜다. 아이큐에 상관없이 은혜를 사모하기를. [종려나무교회 목사, Ph.D www.palmtreechurch.org]
최선주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