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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되돌아온 23장의 5달러 지폐

 수년간 환자로 오던 할머니가 간밤에 구급차에 실려 근처 병원에 입원하게 됐다고 그의 간병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격리병동 독방의 외부인 면회는 금지됐다고 한다. 할머니는 낯선 하얀 벽으로 둘러 싸인 독방에서 불안을 넘어 공포에 잠도 안 온다며 당장 퇴원해 집에 가게 해 달라고, 애원을 넘어 울부짖는 통화를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아들이 있지만 멀리 살고 있어 많은 것을 간병인에게 의존하며 살아오셨다. 거의 독거노인처럼. 한인 환자 중에는 입원했을 때 언어 소통 장애, 낯선 환경, 한인이 없는 고독감, 질병의 고통 등으로 일시적인 정신착란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나도 낯선 그 병원을 다음날 방문했다.
 
하얀 벽으로 막힌 어둠의 적막 속에서 할머니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벌떡 침상에서 일어나 한마디 하신다.
 
“선생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에게 돈 좀 주세요. 여기서 나를 간호해 주는 여러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싶어요.”
 
40년 동안 많은 환자를 보았지만 돈을 달라는 부탁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다. 더구나 점잖은 할머니 환자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니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바로 헤아릴 수 있었다. 간호사들과 보조원들 그외 도움을 주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존재를, 아니 인간 실존을 돈을 통해 확인 받고 그들과 친해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문호 서머셋 모옴은 “돈이란 인간의 여섯 번째 감각이 돼 주어서 이것이 없을 때 인간의 기본 다섯 개 감각이 잘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외로움이란 혼자 있을 때 생길 수 있으나 다시 군중 속으로 들어갈 때 없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군중들이 나와 아무 관계가 없거나 무관심을 보일 때 더 처절한 고독이 찾아 오기도 한다. 친숙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는 여러 장애 요소와 소외감 속에서 돈으로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시키고 친숙한 관계를 생기게 해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할머니 마음의 안정에 도움이 되기를 빌며 내 지갑 속엔 있던 유일한 현금이었던 5달러짜리 지폐 석 장을 드린 후 병실을 나왔다. 다음날 다시 방문해 5달러짜리 20장을 건네며 잘 간직했다가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주시라고 했다.
 
돈을 주는 행동이 옳은 것인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이 먼저다. 좌절감이 극복될 수 있다면 상관없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간병인이 내 오피스로 와서 5달러 지폐 23장이 담긴 하얀 봉투를 건넸다. 병원 의료진 모두가 돈은 받지 않겠다고 완강히 거부해 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할머니가 간병인에게 나에게 돌려주라고 부탁한 것이다.
 
할머니는 그 돈을 의도한 대로 쓰지는 못했다. 하지만 돈을 지니고 있던 그 며칠간은 ‘돈은 휴대용 행복’이라는 말이 있듯이 마음의 평안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건강을 기원하며 5달러 지폐 23장을 다시 지갑 속에 넣었다.

최청원 / 내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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