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주제 파악의 어려움
병식(病識) 이라는 용어가 있다.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려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뜻하는데, 병식이 없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자신이 술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을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병식이 없는 환자를 비웃기는 쉽지만, 사실 우리도 자신을 정확히 파악하는데 몹시 서투르다.
관절염이 심할 때 무릎관절에 주사를 찔러 넣고 약물을 주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의사들이 주사하지만, 미국에서는 ‘임상간호사’나 ‘의사조수’도 시행할 수 있다. 워싱턴 의과대학 세스 레오폴드 교수팀은 직종에 따른 무릎관절 주사 기술에 대한 자신감과 실제 수행 능력의 관계를 분석한 적이 있다. 연구팀은 우선 무릎관절 주사를 자주 시행하는 의사, 임상간호사, 의사조수 93명을 모아 자신의 주사 실력을 10점 만점으로 쓰게 했다. 이후 이들이 무릎에 약물을 주입하는 것을 직접 관찰하여 자신감과 실제 수행능력이 얼마나 일치하는지를 확인했다.
결과는 아주 흥미로웠다. 우선 남성과 여성이 많이 달랐다. 시술에 대해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자신감은 6.3점으로 여성들의 3.0점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았지만, 객관적으로 평가된 시술 능력은 각각 6.6점과 5.9점으로 차이가 뚜렷하지 않았다. 또, 의사들의 자신감이 5.3점으로 임상간호사나 의사조수의 2.8점보다 훨씬 높았지만, 실제 능력은 6.4점으로 같았다. 게다가 자신감 점수가 높을수록 주사 실력은 낮아진다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왔다. 무식할수록 용감하다는 시쳇말이 사실인 셈이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평가야 워낙 어렵다고 치고, 문제를 조금 쉬운 것으로 바꾸어보자. 식사량에 대한 문제다. 사람들은 과연 자신이 방금 얼마나 먹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을까? 설마 그걸 모르겠냐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바로 코넬대학교 브라이언 완싱크 교수다.
완싱크 교수팀은 우선 공짜로 스프만 먹으면 되는 연구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했다. 모두 54명이 연구에 자원했는데, 이들을 반으로 나누어 한쪽 편에는 보통 그릇에 스프를 담아주고, 다른 편에게는 먹은 만큼 저절로 채워지는 특수한 그릇에 스프를 제공하여 먹고 싶은 만큼 먹게 했다. 물론 저절로 채워지는 요술 그릇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참여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완싱크 교수는 도대체 왜 이런 장난스러운 방식의 연구를 했을까?
그는 사람들이 배가 부를 때가 아니라 자기 그릇에 남아 있는 음식의 양이 충분히 줄어들었을 때 식사를 마치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기 때문이다.
완싱크 교수의 예상이 맞았다. 보통 그릇에 담긴 스프를 먹은 사람들은 평균 8.5 온스를 먹은 데 비해, 저절로 채워지는 그릇에 담긴 스프를 먹은 사람들은 그보다 훨씬 많은 14.7 온스나 먹었다. 양으로 치면 73%를 더 먹었고, 열량으로 따지면 113 칼로리나 더 섭취한 것이다.
또 연구팀은 식사를 끝낸 참여자들이 자신이 먹은 양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는 지를 조사했는데, 이 결과도 무척 재미있다. 연구팀이 ‘지금 당신이 먹은 스프의 양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보통 그릇에 담긴 스프를 먹은 사람들은 8.2온스 (실제 먹은 양은 8.5온스)라고 비교적 정확하게 대답했지만, 저절로 채워지는 그릇을 사용한 사람들은 9.8 온스 (실제 양은 14.7 온스)를 먹었다고 응답해서 자신이 먹은 양을 현저히 과소평가했다.
즉, 사람들의 판단력은 자신이 얼마나 먹었는지 여부를 그릇에 남아있는 음식의 양으로만 겨우 짐작할 정도의 수준인 것이다. 사실 사람들은 먹은 양만 모르는 것이 아니다. 비만한 사람들이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잘 모른다는 연구들도 꽤 있다.
그러니 과연 누가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실력 있는 의사인지 아니면 영 서투른지, 방금 얼마나 먹었는지, 혹은 뚱뚱한지 홀쭉한지도 잘 모르니 말이다.
임재준 / 의사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