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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준] 한국으로 기밀 유출 로버트 김 구명 좌절 무력감

  남기고 싶은 이야기 〈제 6화〉 '한인 정치' 물꼬 김창준 전 연방 하원의원

 
 〈16〉 로버트 김 사건의 전말
공식 요청 가능한 정보 빼냈다 8년 중형
불법 요구한 한국 무관 '나 몰라라' 귀국
 
어느 날 의회 사무실에 한국 국회의원이 찾아왔다. 명함에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얼굴이었다.
 
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표정이 심각했다. 앉자마자 뜨거운 커피를 대접했다. 무슨 사정으로 왔는지 물었다. 자신의 형님 일 때문이라고 했다. 형님 이름은 로버트 김이라고 했다. 현재 미 해군 비밀서류 유출 혐의로 기소돼 감옥에 있는 형님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겠냐고 했다.  


 
그는 “누구한테 물어보니 미국 연방의원만이 살릴 수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아마도 개별 법안(Private Bill)을 말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나는 로버트 김이 누구인지 전혀 몰랐다. 일단 전후 상황을 파악한 뒤 연락을 주기로 하고 헤어졌다. 도대체 로버트 김이 뭘 잘못했으며, 미 해군 비밀서류가 어떤 것들이고, 또 이것을 누구에게 넘겼기에 이런 처벌을 받게 됐는지 보좌관들에게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알아본 결과 연방수사국(FBI)이 로버트 김의 불법행위를 포착했다. 6개월 이상 로버트 김이 비밀서류를 꺼내 불법으로 사본을 만든 뒤 누군가에게 지속해서 전해줬다는 혐의였다. 로버트 김이 국가 비밀서류 사본을 만들어 외부로 유출하는 게 불법이란 것을 잘 알면서도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었고, 이는 명백한 범죄라는 설명이었다.
 
공교롭게도 로버트 김이 넘긴 자료들은 특급비밀이 아니었다. 동맹국인 한국 정부가 정식으로 미국 정부에 요청했더라면 사본을 만들어 그냥 줬을 일이었다.  
 
로버트 김이 안타까운 상황에 부닥쳤다고 생각했다. 비밀서류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로버트 김은 엄연한 위법행위를 했다. 그 상황에서 그를 돕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로버트 김에 대해 나름대로 조사를 해봤다. 착실한 크리스천으로, 교회 장로이며 범죄 기록도 없었다. 그의 부인도 기독교인으로 교회에서, 또 한인사회에서 많은 존경을 받는 분이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도대체 왜 이렇게 좋은 분이 이런 엄청난 실수를 했을까.
 
 서류들을 복사해 누구에게 주었는지 알고 나서 또 한 번 놀랐다. 서류들은 매번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에 무관으로 나와 있는 해군 대령 손에 넘어갔다고 했다. 이런 2급 비밀서류라면 동맹국인 미국 정부에 정식으로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왜 알만한 자리에 있는 무관이 왜 로버트 김을 꾀어내 어마어마한 죄를 범하게 했을까. 그 대령이 괘씸했다.
 
좀 더 경과를 알아보니 그 해군 대령은 로버트 김과 평소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어떻게 된 사실인지 대사관에 알아보려 했지만, 그 해군 대령은 이미 한국으로 소환돼 행방을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미국에 무관으로 파견돼 겨우 한다는 게 순진한 한인을 시켜 몰래 국가 비밀서류를 빼내는 따위 일을 하다니. 게다가 억울하게 그를 감옥에 보내고 자신은 훌쩍 본국으로 도주했다고 하니 더욱 화가 났다.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련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정식으로 사안을 조사해 진상을 밝혀내야 하는 일이었다.
 
로버트 김을 도울 방법이 있는지 고민했다. 이번에도 뉴트 깅그리치 연방하원 의장을 찾아갔다. 깅그리치 의장은 사안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을 떼는 게 현명하다고 했다. 사건이 이미 사법부로 넘어가 손 쓰기에는 늦었다는 것이었다. 검찰이 기소해 사법부로 넘어간 경우 절대로 입법부 소속 의원이 사법부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국 정부에 정식으로 항의할까 고민도 했다.  
 
깅그리치 의장 사무실에서 나왔다. 마음이 언짢았다. 이튿날 로버트 김의 동생인 한국 국회의원에게 도와줄 길이 없다고 했다. 이 스토리에 해피엔딩은 없는 듯했다. 다시는 순진한 한인을 감언이설로 꾀어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일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결심이 섰다. 한국 정부가 해외 공관에 특명을 내리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마음먹으며 무거운 심경을 달랬다.
 
얼마 뒤 1년 정도 실형이 나올 것이라는 예측을 뒤엎고 로버트 김에게 8년 형이 선고됐다. 충격이었다. 특급비밀도 아닌데, 적국도 아닌 우방국에 사본을 넘겨 준 것에 이처럼 가혹한 판결이 내려질 줄 몰랐다. 그분 나이가 60세가 훨씬 넘었는데 8년 복역하고 나면 70세를 넘는다. 그동안 연방 정부에서 일한 데 따른 혜택도 없어지고 복역이 끝난 뒤 그분은 전과자가 된다. 조금만 조심했더라면 피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말이다.  
 
미국 법이 무섭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이 넓은 대륙에서 여러 인종이 섞여 사는 미국사회를 질서 있게 이끌어 나가려면 당연히 법치가 우선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마음이 무거웠다.  
 

북한군 동향 등 담긴 복사본 한국대사관 무관에 전달

 
로버트 김 사건은
 
1996년 9월 24일. 미 해군정보국(ONI)의 컴퓨터 분석관이던 그는 주미 한국대사관이 워싱턴 알링턴 포트마이어 육군 장교클럽에서 개최한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됐다.
 
그의 혐의는 국가기밀 취득 음모죄. 당시 주미 대사관 해군 무관인 백 전 대령에게 미국의 국방 비밀을 넘겨줬다는 것이다. 로버트 김은 백 전 대령에게 북한군의 동향과 훈련 실태, 96년 ‘동해안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 당시 북한 잠수정의 침투 경로 등의 정보를 백 전 대령을 통해 한국 측에 알려줬다.
 
그는 97년 ‘미국 시민이 미국법의 심판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간여할 수 없다’는 한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 결국 징역 9년, 보호관찰 3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고 펜실베이니아의 앨런 우드 연방교도소 등에서 만 7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당시 한국 정부는 외교 관계를 의식, 이렇다 할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그의 소식이 전해진 이후 97년 국회의원과 종교계 인사 등이 참여한 ‘로버트 김 구명위원회’가 조직됐고, 2003년엔 ‘로버트 김 후원회’가 발족해 각 기관 등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백방으로 그를 도왔다. 특히 후원회는 2003년 당시 미국을 방문 중이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로버트 김 사면을 건의하고 시민 모금을 통해 그에게 새집을 마련해 주기도 했다.

원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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