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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사람 없는 풍경

 풍경 사진을 보면 사람을 넣고 만드는 작가가 있고 사람이 없는 작품의 작가가 있다. 풍경 어디엔가 꼭 사람을 등장시키는 사진은 풍경과 사람이라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연결 고리를 떠올리게 한다. 사람 없는 좋은 경치 사진은 “아 여기에 근사한 경치가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고 사람이 있는 사진은 “아 여기에 좋은 경치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구나”라는 어떤 이야기를 연상하게 한다.  
 
원시인 복장의 사람이 보이면 그 경치의 오래전 이야기가 있겠구나 하게 되고 군복 차림의 사람이면 무슨 갈등으로 이 시간 이 좋은 경치에 군복이 지나갈까 하게 되고 원색 등산복의 사람이면 이 좋은 경치를 즐기는 좋은 시간이 여기 있구나 하며 그 사람이 되어 그 경치 속으로 들어가는 대리만족 비슷한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사람 없는 풍경이 조금은 이야기 없는 쓸쓸함을 동반한다.  
 
뉴욕 맨해튼 거리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사람 사는 동네 같은 풍경이 된다. 어느 땐가 맨해튼 거리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다소 끔찍한 장면으로 다가왔다. 그 거리에 혼자 서 있는 상상을 해보며 살아있다는 것이 그다지 큰 행운으로 여겨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슬그머니 들어왔다. 미국의 교외 지역 주택가에 처음 들어섰을 때 걸어 다니는 사람이 없어 좀 괴이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동네인가 하며 걸어가고 있는 내 모습이 그 동네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금광 시대가 지나고 사람 없는 집들만 휑댕그래 남아 있는 폐촌을 보며 사람 없는 공간이라는 것이 참 지독하게도 쓸쓸하구나 하며 빨리 사람 있는 공간으로 찾아가야 하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솟아오르고 있다.
 
사람 사는 모양을 그림으로 묘사하면 당연히 그 속에는 여러 가지 모습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조선 시대 백성들의 삶을 그려낸 풍속도와 미국의 결정적 순간을 그린 역사 기록화와 개화기 한국의 모습을 그려낸 여러 기록물에도 그 속에 사람들이 어떤 모습이었는가가 그림의 중요한 내용이 된다.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그러그러한 모습들을 잠시 지우고 사람 없는 무엇으로 대신해야 하는 이상한 경험을 지금 하고 있다.  
 
가수는 관객 없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학생들은 친구도 선생도 옆에 없이 전자기기 앞에서 공부하고 직장인은 혼자 아무도 옆에 없이 맡겨진 일을 무미건조하게 해내야 한다. 대인기피증이 아주 심한 사람이야 그리 나쁘다 하지 않겠지만 직장에서근무시간 같이 있는 것으로는 모자라 퇴근 후에도 모여 앉아 ‘딱 한 잔’의 자리를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은 참으로 지내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어깨를 스치고 지나는 사람들의 당연한 풍경이 사람 없는 풍경으로 바뀌어버린 시간이 당연한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감사를 불러왔다.
 
지구 위에서 사람이 없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런 주제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야 당연히 사람의 이야기가 영영 계속될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만약 사람이 없어지면 몇 만 년 지나지 않아 사람의 흔적은 모두 사라져 버린다고 그 이야기는 말하고 있다. 그러면 그곳에는 사람 없는 풍경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을 것이고 시간이 정지한듯할 것이고 그 속에는 반짝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처음 가는 도시에 들어서면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마치 사람 없는 풍경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게 된다. 오가는 사람 많이 있지만 웃어주는 사람 없는 동네에서 길과 건물만 존재하는 어느 이상한 공간에 떨어진 듯한 혼자라는 기묘한 느낌과 쓸쓸함과 슬픔이 소리 없이 찾아든다. 당연했던 이웃과의 만남이 귀중하다고 느껴지는 2021년 12월, 빈 거리 속을 좋은 사람들로 가득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 풍경 만들기의 문을 열어야 하는 시간이다.

안성남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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