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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

 산다는 것은 한 그루 나무를 심는 일이다. 허허벌판 생의 빈땅 한 모퉁이에 동그라미 하나  그려넣고 땅 파고 작은 생명을 심는다. 여리고 작은 나무 한 그루 사서 뿌리가 단단하게 흙을 밟아준다. 뼈 깎는 한겨울 추위에 죽지 않고 목숨만 보존하면 나무는 작은 두 손 벌리고 무성한 잎새를 키울 것이다.  
 
까닭없이 슬퍼지는 날은 널 그리워했다. 네가 어디서 무얼하며 사는지 이제 흔적조차 찾을 길 없지만 그리움은 잊기 위해 그리워하는 것이다. 편지 한 줄, 예쁜 카드 한 장 부치지 못하지만 우체통 열 때마다 네 소식을 기다리며 가슴이 뛴다. 아파도 참고 견디며 슬퍼도 울지 말고 씩씩하게 달력의 마지막장을 넘겨 주겠니. 그 많은 날들을 무심하게 흘려보내고 한 해를 마무리하며 그리워하는 나를 용서해 주겠니.  
 
참회는 성인들만 하는 것이다. 잘못을 뉘우쳐 해탈할 인내도 참선을 수행할 용기도 없어 그냥 사는 게 부끄럽고 여러 사람에게 미안할 뿐이다.  
 
참회의 참(懺)은 범어의 ‘크샤마’로 ‘용서를 빈다’, ‘뉘우친다’는 뜻이다. 원시불교의 참회에는 포살(布薩)과 자자(自恣)가 있다. 포살이란 비구들이 보름마다 한 번씩 부처나 대비구(大比丘)를 모시고 계본(戒本)을 읽는 전통적인 의식으로, 계(戒)를 범한 비구들은 그 죄를 고백하여 참회를 얻는다.  
 


참회 받고 훈계를 가르치는 대비구에게는 때에 따라서 말할 것, 진실성을 지닐 것, 부드럽게 말할 것,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말할 것, 자비심을 지니고 말할 것 등 다섯가지 주의가 요구된다. 참회는 ‘데사나’ 즉 고백을 의미한다. 스스로 자기의 모든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에 진솔한 뉘우침이 요구된다.  
 
화가는 그림으로 순교한다. 천재 화가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에 고통 받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는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가 그린 단테의 ‘신곡’이다. 단테의 신곡에서 죽음은 냉혹한 수확자가 낫으로 건초를 자르듯 인간을 잘라내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짧은 인생을 산 자는 좀 더 용서 받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여긴다. 산다는 것은 시시각각 죄를 지으며 살고 하루를 더 산다는 것은 구원에서 더 멀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최후의 심판에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천상에서 지옥으로 차례를 매김하는 벌거벗은 인간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리스도 발 아래 오른편에는 살가죽이 벗겨지는 고통 속에 순교한 성 바르톨로메오가 오른 손에 칼, 왼손에 가죽을 들고 있는데 축 늘어진 살가죽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는다.  
 
미켈란젤로는 칼로 정교하게 벗겨진 성자의 얼굴에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넣고 예술가인 자신의 삶이 부끄러워 차마 그대로 바라볼 수 없어 작품 속에 그의 두 눈을 파버린다. 그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고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작품 속에서 자신을 죽임으로써 예술적 순교를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기획되고 예측 가능한 여행이 아니라 알지 못할 항구를 향해 떠나는 돛단배 항로다. 풍랑에 휩쓸리고 두려움과 절망에 내몰려도 닻을 내릴 수 없다.  
 
부족함을 알고 부끄러움을 감내하면 생이 아름답고 빛나는 물감으로 채색되지 않을까. 네 모습 그대로  닮은 작은 나무 한 그루 심는 내일이 오기를 간구한다.

이기희 / Q7 파인아트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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