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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도둑맞은 진보

영어신문 코리아 중앙데일리(KJD)에 근무할 때다. 지금의 여당, 당시의 열린우리당을 두고 한 미국인 에디터 A가 ‘진보 성향의(liberal-minded)’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렸다. 이유를 묻자 기사 하나를 내밀었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한국 진보 정치인들의 답은 불편한 침묵’이라는 요지의 헤드라인이 달려 있었다. “동포의 인권에 눈을 감는 세력을 진보라 부를 수 있나”라고 되묻는 그의 어조는 “1 더하기 1은 2 아닌가”라는 듯, 무미하고도 건조했다. 그에게 한국의 특정 정당 및 소속 정치인에 대한 호불호는 전무했다. 자국의 정치인에 대해선 친(親) 민주당 성향임을 숨기지 않았지만.
 
2022년 대선이 100일도 남지 않은 지금, A가 문제 삼았던 정당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그 성향은 여전한 듯, 아니, 더 심해진 듯하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건강한 문제 제기는 여전히 전무하다. 북한 문제를 떠나서도 상식적으로 ‘진보’라는 분류에 속하기 마련인 가치에도 부합하지 않는 발언과 행동이 은연중 나온다. 지난달 특정 후보 지지자에 대해 “대부분 저학력 빈곤층 그리고 고령층”이라고 폄훼하는 발언을 페이스북에 써 놓고 다음날 “부적절한 부분이 있어 수정”했다는 구차한 변명은 차라리 귀엽다.
 
이번 대선은 여러모로 괴이하지만 ‘진보 vs 보수’ 구도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점에선 슬프기까지 하다. 각자가 악다구니로 지키고자 하는 것이 다를 뿐인 ‘수구A vs 수구B’의 대결에 다름 아니다.  
 
진정한 진보야말로 소중한 가치일진데, 대한민국의 2022년 봄날이 벌써 우울한 건 마음이 너무 앞서는 것이기를 바란다. 박완서의 단편 ‘도둑맞은 가난’처럼, 대한민국의 진보는, 진보인 연(然)하는 이들에게 도둑맞았다. 한때는 진보의 얼굴이었을지 몰라도 이젠 진보의 탈을 쓰고 수구 세력이 돼버린 이들에게.
 
야당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진보와는 동떨어진 개인의 앙갚음과, 다양한 기득권을 되찾고자 하는 모습이 도드라진다. ‘적폐 청산’이라는 가시투성이 뫼비우스의 띠에 한국 정치가, 한국이라는 나라가 갇힌 것은 아닌지, 그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으로서 걱정스러울 뿐이다. 올 2월 별세한 고(故)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식사 때마다 “국민은 위대하다”고 강조하곤 했다. 매번 옳지는 않았으나 중요한 시기에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것은 한국 유권자들이었다는 주장이었다. 정치인들에게 기회를 주다가도 고삐가 풀렸다 싶을 때 단죄를 하는 게 대한민국 민심이라 했다. 내년 3월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들려오는 소식은 죄다 블랙 코미디인 2021년 12월이 유난히 삭막하다.

전수진 /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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