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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장진호 전투

지난 11월 LA에서 FORGOTTEN VICTORY라는 다큐영화 시사회에 초대받은 행운을 얻었다. 레인 빅토리호 선상에서 금발 미모의 발레리나가 갑판을 누비며 첼로의 반주와 환상적인 안무로 시작되는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한 편의 예술영화 서막 같았다. 7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때 그 배를 타고 피난 왔던 실존 인물들이 들려주는 회고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 선박은 6·25 전쟁당시 흥남 철수작전에 참여해 피란민 7000여 명을 피난시킨 화물선으로 지급은 산페드로 항구에 정박해 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 한국정부에서 매입을 희망한다는 보도를 접한 적도 있는 선박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화물선은 메리디스 빅토리아호이고(아이러니컬하게 중국에 팔려 고철로 분해되었다), 레인 빅토리아호는 이름이 비슷한 다소 혼동스러운 이름들이다.
 
마식령 산맥에 자리한 장진호의 1950년 12월은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영하 30도 체감온도는 영하 40도, 침을 뱉으면 얼음판 위에 동전을 던진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십여 년 전에 읽었던 장편소설 ‘얼어붙은 장진호’(고산 지음), ‘Break out’(마틴 러스, 임상균 역)을 적당히 난방된 뉴저지 아파트에서 다시 읽었다. 그리고 15회에 걸친 다큐멘터리 장진호 전투 영상을 편안히 감상하였다. 당시 들어 보지도 못하였던 한국이라는 전쟁터에서 희생된 미군들의 조국에서, 나는 합중국의 시민이 되어 산화한 미군장병들의 안방을 차지한 것 같은 송구한 마음이 드는 불편한 심기이기도 하다.
 
낙동강 방어선까지 밀렸던 전세가 유엔군의 막강한 화력의 우세는 삼팔선을 돌파하고 북진을 계속였다. 하지만 맥아더 원수나 트루먼 정부는 중공이 참전하지 않은 것이라고 오판하였고, 동경의 극동 사령부는 동결된 압록강을 야간에 도보로 침투하는 중공군의 12만 8000명의 대군이 도강하는 정보를 놓쳤다. 그후 포로된 중공군의 실체를 보고 받았으나 이 또한 간과하였다. 유엔군은 국지전에서 전술적으로는 우세한 전투가 많았지만 전략적으로는 실패한 전쟁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 장군에게 만주 폭격을 허용하였다면 한반도는 통일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아쉬움이 앞선다.  
 
원산에 상륙한 미 해병 1사단은 장진호 부근에 매복한 중공군의 유인작전에 완전포위되어 북진을 멈추고 후퇴하며 막대한 인명손실로 그들의 사기는 극도로 저하되었다. 동상과 동사의 위협 속에 힘겨운 후퇴를 하면서도 미 해병대의 자존심 때문에 후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우리는 새로운 방향으로 진격한다”는 억지를 쓰며 흥남으로 퇴각하였다. 기록영상이나 전쟁사를 보면 연합군은 항공지원과 막강한 대량살상의 화력을 가졌지만 파도처럼 겹겹으로 밀려오며 꽹가리, 피리, 수류탄으로 무장한 야간공격에 무너지고 말았다.
 
20대의 젊은 청년들이 미국의 풍요로운 삶을 등지고 오직 명령에 죽고 사는 군대에 입대하여 듣도 보지도 못한 한국의 산하에서 꽃같은 목슴을 바쳐 산화한 그들을 생각할 적에, 전후 미국 땅에 정착한 재미 한인의 한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것 같다. 한반도를 지켜주며 산화한 미국 군인들과 참전하였던 미군 장병들에게 12월의 추위 속에서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윤봉춘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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