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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예술을 관통하는 시정신

‘시를 공부하지 않고서는 말할 게 없다(不學詩 無以言).’  
 
공자님 말씀이다. 여기서 말하는 시란 매우 폭넓은 뜻을 아우르는 낱말이다. 공자께서는 시는 감흥하고, 감찰하고, 사교하고, 풍자한다고 말했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시를 배우지 아니 하는가? 시는 감흥을 일으키며, 마음을 볼 수 있으며, 여러 사람들과 사귀게 하며, 위정자를 원망할 수 있게 한다.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기며, 멀리는 임금을 섬기고,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될 것이다.”(논어 양화 9편에서)
 
시의 중요성을 강조한 옛 어른들의 말씀은 참 많다. 그만큼 본질적이고 중요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다산 정약용의 ‘시대를 아파하는’이나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시변’ 등은 높이 평가받고 자주 인용되는 말씀이다. 다산께서 말씀하신 시론(詩論)의 내용은 이렇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며,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고 미운 것을 밉다고 하며, 착한 것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은 시는 시가 아니다.”
 
유교에 바탕을 둔 옛날식 고루한 시론이라고 읽어 넘길 수도 있겠지만 시대를 아파하는 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시라는 말씀은 오늘날에도 존중 받아 마땅한 말씀이다. 시를 통해,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될 것이라는 말씀도 새겨들어야 할 가르침이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시론은 예술 전반은 물론, 사람 공부 즉 인문학을 아우르는 핵심적인 정신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두루 유용한 가르침이다.
 
모든 분야에서 시정신(詩精神)이 필요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특히 미술에 유효할 것 같다. 미술 중에서도 추상미술은 근본적으로 시적 울림과 바로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음악과 상통하는 부분도 물론 많지만 시와도 직접적으로 통한다.  
 
옛 말씀에 ‘그림 안에 시가 있고(畵中有詩), 시 안에 그림이 있다(詩中有畵), 시와 글씨와 그림은 본디 하나이다(詩書畵一體)’라는 말씀이 바로 그런 경지다. 그러니 공자님 말씀대로, 시를 공부하지 않고서는 말할 게 없는 것이다.
 
실제로 좋은 화가들의 그림에는 시적 운율이 넘실거린다. 김환기의 작품이 그렇고 김용준, 유영국, 윤형근, 박수근, 천경자, 김창열, 최욱경 등등 많은 작가들의 그림도 시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다. 동양의 옛 그림들은 아예 그림과 시가 하나로 어우러져 비로소 완성된다.
 
그리고 뛰어난 화가들은 대개 글도 잘 쓴다. 기교를 넘어서 마음으로 절실하게 쓰기 때문이다. 고흐의 편지나 이중섭이 일본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낸 엽서들이 좋은 예다.  
 
김환기는 직접 시를 쓰기도 했고, 서정주의 시를 화면에 써넣은 작품도 남겼다. 그의 대표작인 점화 첫 작품의 제목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친한 벗 김광섭의 시의 한 구절을 따온 것이다.
 
우리 미주 한인미술가들에도 시를 많이 읽고, 가능하면 직접 써보라고 권하고 싶다. 꼭 시가 아니라도, 글을 써보면 그림을 그리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글과 그림은 표현 방법은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형제지간이기 때문이다. 글과 그림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낱말이다.
 
그림에 대한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안개처럼 막연하던 것이 또렷해지기도 하고, 메시지와 이미지 사이의 균형이 잡히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과의 소통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시정신의 핵심이고, 매우 중요한 배움이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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