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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맛 보다는 잠

-93세 아버지와 63세 아들이 함께 떠난 여행(7)

군산과 전주는 불과 한 시간 거리다. 군산에서 전주로 이동하는 길은 간단했다. 회전 한 번 없이 번영로를 따라 동쪽으로 한 시간 달리면 전주에 들어선다. 군산이 역동적인 놀라운 변화의 도시라면, 전주는 옛것을 잘 보존한 도시라고 했다.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다. 황금빛의 벼가 격자무늬로 수놓아진 대지는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아버지, 여기가 우리나라 최대 평야인 호남평야인가요?” 아버지는 곤히 주무시느라 대답이 없으시다. 멀리 완만한 산등성이만 보일 뿐 넓은 곡창은 끝이 없다. 일제강점기 때 이곳에서 수확한 쌀을 이 도로를 통해 군산에서 일본으로 배로 날랐다던 그 길인가? 궁금해졌다. 아버지는 어쩌면 아실 텐데….
 
군산 하면 ‘회’, 전주 하면 ‘전주비빔밥’이듯이 사람들은 지방 도시를 얘기할 때 그 지역을 대표하는 먹거리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이번 여행이 시작되기 전부터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먹거리 추천을 받은 적이 있었다. 어디를 가면 무엇을 꼭 봐야 한다는 것보다는 무엇을 꼭 먹어야 한다는 말들을 더 해 주셨던 것 같다. 음식은 그 지역의 많은 것을 반영하기 때문에 여행의 중요한 아이템 중의 하나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번 여행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고작 하루에 세 끼인 데 아침을 호텔에서 잘 먹고 나서 점심에 구경하다 한 상을 먹고 나면 저녁은 그다지 식욕이 없다는 점이다.  
 
93세의 아버지와 63세의 아들이 함께 여행하며 공감하는 것 중 하나가 예전 같지 않은 식욕이다. 마음은 청춘인데 몸이 안 따르는 것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식욕이다. 나와 아버지처럼 매일 섭취해야 하는 하루 영양제와 약들이 손바닥 한 줌인 사람들에게는, 맛난 음식들에 대한 욕심보다는 시간 맞추어 먹어야 하는 약을 서로 잘 챙기며 다녀야 하는 그런 여행이었다.  
 
잠시 졸고 계셨던 아버지는 많이 피곤하신 듯했다.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3시 조금 넘어서였다. 깨끗하고 편안한 침대를 보니 절로 쉬고 싶었다. 잠이 쏟아져서 잠시 눈을 감고 한 시간만 쉬었다가 한옥마을에 가서 전주비빔밥을 저녁으로 먹기로 하고 아버지와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여행을 하고 있었지만 시차적응도 못 한 나와 바쁜 일정을 함께해야 했던 아버지에게는 아무래도 누적된 피로가 많았다. 아뿔싸! 비몽간에 내가 눈을 잠시 떴을 때는 저녁 9시가 너머 있었고 아버지는 아직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전주비빔밥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에게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잠을 잘 자는 것이었다. 필요한 수면은 산삼보다 더 좋은 보약이라 했던가.  
 


인기척에 눈을 뜨니 아버지께서 먼저 일어나 계셨다. 그때가 새벽 세 시, 열 시간 정도를 푹 자고 난 두 사람은 서로 어이없이 마주 보며 웃었다. 정리해 보니 내가 잠시 깨면 아버지가 곤히 주무시고 계셨고, 아버지가 잠시 눈을 뜨셨을 땐 내가 옆에서 정신없이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었다. 서로에게 잠을 배려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충주에서 누님이 간식으로 챙겨 주신 홍로 사과와 초코파이를 먹으며, 지난여름 뉴욕에서 온 증손주들과 코로나 방역 때문에 극적 상봉했던 얘기로 꽃을 피웠다. 남들 다 자는 그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같은 손주들을 서로 자랑하며 좋아하고 있는 두 할아버지의 즐거움은 창밖이 훤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강영진 /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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