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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오아시스에는 문이 있다

 LA에서 열리는 상담치료 콘퍼런스가 올해도 비대면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떠나는 날 새벽 비로소 알았다. 주최 측 이메일이 다 정크로 들어가서 몰랐다. 덕분에 호텔에서 편하게 강의를 듣고, 이곳 절친과 시도 때도 없이 만나고 있다. 강의들은 90일 이내 볼 수 있어서, 금요일엔 게티 박물관과 말리부 게티 빌라에 들른 후 산타모니카 해변의 일몰까지 감상하고 돌아왔다. 뜻밖의 오아시스를 친구와 즐기는 중이다.    
 
사막을 건너는 두 번째 방법은,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는 것(Stop at every oasis)이다. 사막 같은 삶에서 오아시스를 만났을 때, 쉬는 것은 선택이 아니고 필수다. 더 많이 쉴수록 더 오래 갈 수 있다. 필요한 것을 재충전하고, 여정을 재점검하고, 다른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오아시스라고,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Shifting Sands)의 저자 스티브 도나휴는 말한다.
 
살다 보면 나를 돌보는 일은 늘 뒷전으로 밀린다. 쉼 없는 부모의 삶에도 오아시스는 필요하다. 오아시스가 반드시 비싼 스파나 긴 여행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저 할 일 하나 눈감아 두고, 하고 싶은 거 하나 하는 것이다. 설거지 방향 안 쳐다보고, 좋아하는 커피 한 잔과 잠시 책을 읽는 것이다. 베이비시터를 구해 몇 시간이라도 친구나 배우자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오아시스는 메마른 곳에 물을 주는 곳이라고 도나휴는 말한다. 그래서 진지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좀 헐렁헐렁 웃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말이면 코미디언으로 변신하는 장례지도사, 고속도로 오토바이족으로 돌변하는 교감 선생님 등은 우리에게 얼마나 오아시스가 필요한지 보여준다.
 


자전거도 못 타는데 오토바이를 탈수도, 코미디를 할 수도 없는, ‘완존 범생 사모·교사 출신’ 심리치료사인 나의 오아시스는? 책 하나 들고 찜질방 가기(요즘은 좀 불안하긴 하다), 뻔한 멜로드라마 보며 멍때리기(첫 회만 보면 결론이 쫘악), 헤이즐넛 커피와 땅콩크림 빵 하나(내 주치의는 제발 안 보시기를), 책방에서 수첩이나 노트 고르기(에고, 사놓고 안 쓰는 노트가 서랍 가득), 사악할 만치 비슷한 퍼즐 조각 맞추기(성취감 최고) 등등이다. 이 어이없는 오아시스들이 나를 다시 진지하고 치열하게 살게 해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앤 라못은 미혼모로 아들을 키우며, 사는 게 무섭고 힘이 없을 때 혼자만의 오아시스를 가졌다. 향이 좋은 촛불과 애견 옆의 낡은 소파에 누워 M&M 초콜릿을 수북이 담아놓고 잡지를 읽는 거, 이것이 그녀의 오아시스였다. 소박한 이 시간이 그녀에게는 사막 같은 삶을 다시 살아갈 힘을 충전해주었다.  
 
도나휴가 만난 오아시스에는 벽과 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문에는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외부인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였다. 우리의 오아시스에도 벽과 문은 꼭 필요하다. 특히 나같이 No를 못하는 사람은, 와, 오아시스다 하고 들어가려는 순간, 뭔 일이 생기면 빛의 속도로 뛰쳐나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나 아니면 누가 해결할까(누가 도와달랬냐고!) 이런 생각들, 길어만 가는 To Do 리스트, 긴급한 일들의 횡포, 완벽주의 성향 등이 오아시스 문을 부수려고 아주 안달이 난 침입자들이다. 이것들로부터 나의 오아시스를 지켜야 한다.
 
나의 마지막 오아시스는 언제였는지, 물을 주어야 할 내 삶의 메마른 부분은 무엇인지, 우리 모두 가끔은 오아시스에서 쉬고 힘을 얻을 수 있기를 이 겨울 기대해본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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