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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설복의 말로 경쟁하는 선거

집권여당과 대표는 이번 대선을 정권재창출이 아니라 정권교체의 선거라고 말을 바꾸었다. 여당 후보자는 국민에게 사죄한다면서 갑자기 큰절을 하고, (여론 때문에 추진을 중지했던 법안과 선거에 도움이 되는 법안을 최대한) ‘패스트 트랙’에 태워 처리하자면서 상임위원장의 방망이는 두드리라고 있다며 독려한다. 여당 원내대표는 종부세 고지를 (가진 자) 1.8%에 대한 (특정 목표물을 겨냥한 폭격의 의미를 지닌) ‘정밀타격’이라고 불렀다.
 
제1 야당은 선거운동 진용의 인사와 권한 문제로 한 달 가까이 허송세월을 했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우위를 선거의 결과로 여기며 김칫국 쟁탈전을 벌이는 오만이었다. 민주주의의 보루인 선거에 절박하게 올인 하지 않는 한가한 정당은 국민을 희롱하는 것이다.
 
달나라에서 방아를 찧던 토끼를 또 소환하여 선거 전략에 따라 집토끼 산토끼로 갈라치는 것은 낯익지만 새로운 풍경도 보인다. 정치적 셈법에 따라 20대 30대 젊은이들을 보물로 부상시킨 것이다.  
 
상처투성이 3포·7포 세대를 여야 모두 최우선의 파트너로 모시려고 혈안이지만 구조적인 문제의 원인과 해결에 대한 복안은 모호하다. 대학입시를 제외하고는 존재감을 무시당하던 10대 고교생 세대에 대한 조명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가 짜놓은 주입식 정답의 틀에 짓눌려 ‘생각하는 백성’으로서 역할이 박탈되었던 그들에게 지역선거대책위원이라는 직책부터 맡기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고교생 유권자들이 이번 선거에서 원하는 이슈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여론조사라도 먼저 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니겠는가.
 
 ‘선거에 지면 우리는 죽는다’는 정치꾼들의 강박관념은 ‘선거의 말’을 야누스의 얼굴로 만든다. 한쪽은 매혹의 향유를 자처하는 말. 말의 성찬 속에 국민과 나라는 내내 안녕할 뿐이다. 다른 쪽은 사생결단의 살의를 담은 말. 특정 후보나 정당을 무조건 찬성하는 국민이 아니라면 말에 치여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코로나 때문에 코와 입에 씌워진 마스크로 숨을 제대로 못 쉰 지가 이미 2년인데, 이젠 산소호흡기라도 써야 할 판이다.
 
3월 9일, 투표일까지 남은 날들이 걱정스럽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끝난 고약한 경험을 돌이키면 선거의 말 잔치 속에 거짓말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전문적인 조언을 받은 이른바 선의의 거짓말(white lie)은 물론이고 전략적·의식적 거짓말(black lie)도 상당할 것이고, 거기에 눈물·사과·표정·제스추어와 같은 비언어 행위는 거짓말에 정교함을 더할 터이다.  
 
연구에 의하면 개인이 거짓말을 탐지할 수 있는 능력은 고작 54% 정도다. 우연히 탐지할 수 있는 비율인 50%와 별반 차이가 없다. 이런 거짓말과 공약을  정파성에 얽매이지 않고 따져줄 언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것도 염려스럽다.
 
국민이 고통스러워도 ‘카오스의 말’이 스스로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확실한 근거에 토대한 주장·설득·반박·옹호 대신에 ‘맞으면 좋고 틀리면 말고’ 식의 비방·비하·욕설·폭력의 막말이 설칠 것이다. 대통령직이 권력과 인사를 독식하고, 산업과 역사의 방향에 대한 대못 박기로 군림하는 한 그럴 것이다. 자화자찬과 칭송에는 입과 귀를 열고 비판에는 입과 귀를 닫아도  문제가 없으니 승리를 향한 선거의 돌진을 막을 묘안은 없다.  
 
그러나 선거판의 말이 혹독한 가난에서 벗어나 세계 10대 선진국의 수준에 이르게 한 국민의 피와 땀을 인정하고 발전을 지속할 수 있는 품격과 통찰력과 신뢰감을 지니는 가에 대한 평가는 중요하다.
 
“호메로스 시대 이래로 무기로 적을 죽이는 전쟁과 말로 상대방을 설복하는 언쟁을 똑같게 취급한”(키케로, '수사학') 지혜에서 배워야 한다. 말의 가공할 유용함과 해로움을 분간해야 한다.  
 
거짓의 말, 내로남불의 말, 국민을 내편 네 편으로 구분하는 말은 전쟁의 말이다. 사실을 왜곡하고, 공존의 가치를 폄하하고, 공동체의식을 파괴하고, 급기야 인간의 존엄성도 훼손한다. 선거의 말은 전쟁의 말이 아니고 설복의 말이어야 한다. 선거와 정권은 짧고 대한민국은 길다.

김정기 / 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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