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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네트워크] 카네기홀 첫 공연 누가 했을까

 뉴욕 카네기홀 첫 공연에서 미국인만 연주했을까. 아니다. 주인공은 러시아의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였다.
 
1891년 5월 5일 화요일 오후 8시 당시 ‘뉴뮤직홀’이었던 카네기홀이 문을 열었다. 이날 무대의 주요 지휘자는 당시 51세이던 차이콥스키. 난생 처음 미국을 방문해 자신의 ‘대관식 행진곡’을 지휘했다. 나흘 후엔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지휘하면서 미국 대표적 공연장의 오프닝과 함께했다.
 
차이콥스키는 예민하고 내성적이었다. 뉴욕에서 느낀 첫 감정은 향수. “내 바람은 딱 하나다. 집으로! 집으로! 집으로!” 이런 일기를 쓴 그에게도 새로운 문명은 매혹적이었다. “어디를 가든 유럽에 비하면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으리으리한 이 공연장에는 수백만 달러가 들어갔는데 음악 애호가들이 냈다고 한다. 우리 고향엔 이런 것들이 없다.”
 
미국도 차이콥스키를 열렬히 반겼다. 미국 교향악단들은 차이콥스키 작품을 이미 열심히 연주하고 있었고, 뉴요커들은 어디에서든 그를 알아보고 열광했다. 카네기홀 아카이브가 정리한 당시 신문 리뷰를 보면 “남의 것을 흉내 내지 않고도 강력한 예술을 한다. 젊은 러시아의 완벽한 본보기”라 평하고 있다.
 
차이콥스키는 가장 러시아적인 작곡가였다. 고유의 전통을 고민한 그의 음악에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탈피한 러시아 자체가 들어있다. 따라서 미국과 그의 첫 만남은 서로 다른 문화가 섞이는 일이었다.  
 
차이콥스키는 카네기홀 설립자 앤드루 카네기를 만나 “전보를 배달하던 소년이 미국 최고 부자가 됐다”며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인상을 기록하고, 나이아가라 폭포에 방문하고, 필라델피아·볼티모어에서 연주하며 한 달을 보냈다.
 
지난달 23일 서울에서 러시아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언급한 ‘카네기홀의 차이콥스키’가 바로 이 스토리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한 공연 전에 기자 간담회를 열어 “차이콥스키의 카네기홀 공연과 같은 일을 희망한다”고 했다. 다음 날 공연에서 21세기의 한국 청중도 다른 문화를 만났다. 팬데믹으로 한동안 없던 외국 오케스트라의 음악이었기에 생경함은 강렬했다.
 
지난달 오스트리아의 빈 필하모닉, 러시아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 그리고 게르기예프가 한국에 다녀갔다. 팬데믹 중 짧게 열렸던 문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가 섞였다. 해외 음악가들이 더 뛰어나거나 훌륭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 다르다는 점에서 그들의 무대가 필요하다.
 
이달 3일부터 해외 입국자의 자가격리가 열흘이 됐고, 연말 예정됐던 내한 공연이 취소되고 있다. ‘카네기홀의 차이콥스키’가 언제 다시 가능할까. 지난달 내한 공연들이 1891년만큼이나 아득히 멀다.

김호정 / 한국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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