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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기초 없는 ‘사상누각’ 교육

장병희 사회부 부국장

장병희 사회부 부국장

 미국에서 자녀를 초등학교부터 키운 사람들의 상당수가 깨닫는 것이 미국교육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친다는 것이다. 아이가 프리스쿨에 들어가면 알파벳을 가르치면서 연결된 발음을 익히게 한다. ESL클래스를 다녀 본 사람이라면 한국에서 대학까지 나온 성인에게 알파벳 발음을 처음부터 가르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영어 교육은 그렇게 기초부터 가르친다.
 
덕분에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학생들의 발음은 물론, 글 쓰는 수준도 아주 비슷하다. 주류 언론에서는 고교 졸업률, 졸업 시험의 합격률과 관련해 미국 교육이 벼랑 끝으로 밀려나는 것처럼 기사를 쓰지만 실상 기초교육은 확실하게 돼 있다고 봐야 한다.  
 
반면 한국의 초등학교에서는 기역, 니은, 디귿부터 가르치지 않는다. 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한글이 워낙 쉽다 보니 따로 배울 필요가 없었다.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인해 이보다 더 쉬운 말이 있는가 싶어서다. 맞는 말이다. 한나절만 가르치면 한글을 깨우칠 정도다.  
 
하지만 한국어나 한글이 누구에게나 쉬운 언어가 아니다.
 
한국에 외국인이 많이 유입되면서 그들이 한글을 배우면서 겪는 어려움을 보고서야 한국어 교육이 기초부터 가르치지 않는 것을 알았다. 중학교 1학년 때 자음접변, 모음조화를 배우고 나서야 한글도 발음 그대로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삼국시대를 얘기하며 ‘신라’를 썼지만 그것이 [실라]로 발음되는지 몰랐다. 더욱이 한국어에 표준적인 발음이 마땅히 없었다는 점을 최근 알게 됐다. 아니면 있는데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아서 몰랐거나 공부를 등한시한 86세대들만 몰랐을 수도 있다.  
 
한국어도 장음과 단음이 있고 자음도 유성음과 무성음으로 나뉘며 고유한 발음을 갖는다. 또한 바로 뒤에 어떤 모음이 붙느냐에 따라 정확한 발음이 있을 텐데 들어서 알고 쓸 줄은 알지만 따로 배운 기억이 없다. 한국 성인들은 발음이 조금 달라도 머릿속에 기억된 문장 덕분에 큰 문제 없이 이해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장음과 단음을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표준적인 발음에 주목하게 된 것은 바로 음성 인식기술 때문이다. 영어 발음은 대부분 문자로 데이터화 할 수 있는데 같은 시스템이라도 한국어는 오차 허용 범위가 더 넓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머신러닝을 통한 인공지능이 해결해 준다고 설명하지만 그렇게 쉬워 보이지 않는다.  
 
굳이 인공지능에서의 문제가 아니어도 한국어 발음의 부정확성은 확실히 있다. 일상에서 심지어 같은 한국 사람과 통화할 때도 정확한 단어와 이름을 알기 위해서는 다시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넘겨짚어서 받아 적어 놓으면 엉뚱한 이름과 숫자가 되기 쉽다.  
 
기자의 이름이 장병희인데, 병과 희가 인접하면서 제대로 발음이 안 날 때가 있다. 수화기 저쪽에서는 ‘장경희’나 ‘장병시’라고 듣기도 한다. 영어도 이름에 특이한 스펠링이 많아서 알파벳을 따로 불러주기도 하지만 한글 이름을 따로 불러줘야 하는 경우는 드물다.  
 
한국에서도 유연성, 열린 사고를 강조하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이고 있다. 하지만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 좋다는 것만 따라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 것이 기초과학을 소홀히 해서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미국에서 아이를 키운 학부모로 내린 결론은 한국은 너무 급하게 ‘빨리빨리’ 성장한 나머지, 정치, 사회, 문화,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기초를 튼튼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한국의 교육이 사상누각을 짓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장병희 / 사회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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