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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설렘이 충만한 여행

-93세 아버지와 63세 아들이 함께 떠난 여행(6)

아버지와 나는 기세가 넘치는 목포 조선소의 골리앗 같은 기중기들로부터 새로운 기를 받고 소망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축복 받은 목포의 아침을 맞이했다. 조식하는 식당엔 많은 사람으로 이미 북적였다. 아버지가 호텔 조식 뷔페를 좋아하시는 이유가 있다. 미국 생활을 오래 하셨던 아버지는 웨스턴 오믈렛과 소시지 크루아상, 오렌지 주스, 채소, 과일을 매우 좋아하셨다. 그리고 아들이 다 알아서 풀 서빙하는 둘만 함께 하는 편한 자리였다. 반면 아직도 미국에 사는 나는 이런 곳에 오면 평소에는 아침으로 먹지 않았던 흰죽에 짭조름한 멸치볶음 같은 밑반찬과 잘 구운 김, 황탯국에 손이 먼저 갔다.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서 서로 다른 노스탤지어를 품고 아침 식사를 했다.
 
목포는 ‘눈물’과 ‘항구’로 알려진 도시라기보다는 옛것과 새것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새로워지고 있는 듯했다. 한편엔 바다 위 하늘을 나는 케이블카들이 연이어 떠 있었고, 다른 한편 신안 앞바다에는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떠 있었다. 유달산 정상에서 드리워진 케이블카로부터 이름 모를 그 작은 섬들까지 이르는 목포는 더는 눈물의 항구로만 기억되지 않을 것 같은 설렘이 충만한 도시였다.  
 
군산 새만금으로 향했다. 목포에서 군산까지는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오늘은 70년대 조미미가 부른 ‘바다가 육지라면’이라는 노래를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아버지 시절의 노래다. “얼마나 멀고 먼지 그리운 서울은 파도가 길을 막아 가고파도 못 갑니다. 바다가 육지라면 바다가 육지라면” 새만금은 방조제로 만경강과 동진강의 하류를 막고 내부를 매립하여 지도의 모양을 바꾸어 놓은 18년 이상 걸린 이 지역의 숙원 사업이었다. 오랜 기일에 걸쳐서 큰일을 하다 보면 정권교체, 산업 수요의 변화와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견해로 말 많고 탈 많은 것은 다반사다. 그래도 바다가 육지가 되었다는 것은 이 작은 나라가 커졌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한 일이라고 아버지와 나는 뜻을 같이했다.  
 
어느새 새만금이라는 푯말을 지나 바다가 육지가 된 땅을 달리고 있었다. 처음엔 농지를 확장하려는 목적이었으나 쌀의 수요가 줄면서 산업 단지를 조성하게 되었다고 했다. 간척지 끝까지 도착하니 군산과 부안을 바다로 연결하는 방조제가 있다. 이 방조제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긴 시설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했다. 코로나 상황임에도 많은 사람이 추석 연휴에 가족 단위로 눈에 띄었다. 그곳 수산 시장이며 큰 규모의 횟집들이 즐비한 모습들은 대단했다. 긴 방조제를 달리다 중간쯤에 있는 휴게소를 들러 깨끗한 화장실을 감사하게 사용하고 되돌아왔다. 이 지역의 명소로서 큰 발전에 이용되길 아버지와 나는 바랐다.
 


해가 중천이다. 많은 항구 횟집들도 있건만 비린내가 진동하는 길목을 벗어나자고 하셨다. 새만금을 벗어나 시내 군산 대학 근처에 있는 황금 코다리찜과 갈비찜을 전문으로 하는 맛집을 찾아갔다. 코로나 방역에도 불구하고 식당은 만원이었다. 서울보다 지방이 방역 제한이 허술한 듯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입에서 벌써 군침이 돈다. 짜지도 맵지도 않게 주문한 대로 맛있는 점심이 나왔다. 군산은 목포와 맛이 조금 달랐다. 차로 1시간 반 차이뿐인데도 반찬에서 젓갈 냄새가 덜 나는 것 같았다. 식당 카페에서 무료 제공하는 커피 한잔 마시고 전주로 향했다.

강영진 /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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